[2017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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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준결승 3국> ●안국현 8단 ○탕웨이싱 9단

13보(175~193)=한국 바둑 팬들이 간절히 바랐던 기적 같은 역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193까지 수순으로 이 바둑의 윤곽은 모두 확정됐다. 막판 중앙에 흑집이 조금 불었지만, 승부가 뒤집히지는 않는다. 이제는 반상을 아무리 탈탈 털어봐도, 더는 집이 붙을 구석이 없다.

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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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바둑은 222수까지 계속됐다. 나머지 수순은 '참고도'로 미룬다. 안국현 9단은 미련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는지, 승부에는 무의미한 마무리를 한참이나 이어갔다. 뼈아픈 패배로 무너진 가슴을 애써 달래며 자신을 수습하는 과정이었을까.

바둑이 끝나고 탕웨이싱 9단은 다시 한번 안국현 8단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안 8단과 대결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에서 가장 강한 기사는 박정환 9단인 것 같다. 안국현 8단도 잘 두지만, 박정환 9단보다는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둘은 실력 차이가 크게 나는 거 같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 발언이 좀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통역은, 혹시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닌지 몇 번이나 되물었다. 하지만, 탕웨이싱 9단의 대답은 변함없었다.

참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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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탕웨이싱 9단의 발언을 접한 한국 바둑 팬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선 승자가 곧 왕인 법이다. 애석하지만 분을 삭이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통쾌한 복수의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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