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now] "우리는 한 핏줄" 13억 동족애 과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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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기리며
조상의 묘를 찾거나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는 청명절을 맞아 5일 공자를 기리는 행사가 그의 고향인 산둥성 취푸(曲阜)에서 열렸다. 사회주의 중국 건국 이래 줄곧 봉건 잔재의 상징으로 매도됐던 공자는 탄생 2555주년이었던 2004년에 와서야 중국 정부가 공식 제사를 올리면서 완전 복권됐다. [취푸 AP=연합뉴스]

민족의 시조 앞에서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없었다. 통일도 독립도 없었다. 그래서 미움도 없었다. '우리는 한 핏줄'이라는 가족애만 있었다. 화하(華夏.중국)의 13억 인민은 청명인 5일 중국 민족의 시조인 황제(黃帝) 헌원(軒轅) 앞에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이날 오전 9시50분.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북쪽으로 200㎞가량 떨어진 황링(黃陵)현 차오산(橋山) 정상에 자리 잡은 황제릉의 헌원전 앞. 드넓게 마련된 무대 아래로 대륙.대만.홍콩.마카오에서 뽑힌 헌원의 자손 5000명이 모였다. 황제 헌원께 공제(公祭.국가가 올리는 제사)를 드리는 자리다. 이날 화하의 자손을 대표한 제주는 중국 최대 철강기업인 바오산(寶山)강철의 셰치화(謝企華) 동사장(이사장.여)이 맡았다. 참석자의 면면도 화려했다. 국가를 대표해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의 한치더(韓啓德) 부위원장이 좌장을 맡았다. 정당과 사회단체를 대표해 중국정치협상회의의 리자오줘(李兆) 부주석이 나왔다. 산시성을 대표해 리젠궈(李建國) 당서기와 천더밍(陳德銘) 성장이 참석했다.

그러나 헌원의 마음을 가장 흡족하게 한 것은 아마도 대만에서 온 700여 명의 자손이었을 것이다. 대만 중부 타이중(臺中) 출신의 자오강(趙剛.61.세탁업)은 "시조를 지금에야 찾아뵈었으니 몹쓸 자손"이라고 자책하면서 계속 절을 했다. 가오슝(高雄)에서 온 창(常) 할아버지(75)는 "산시가 고향인데 첫 귀향길에 시조를 알현해 영광"이라고 좋아했다.

10초 동안의 묵념에 이어 전통 북인 문천(聞天)과 종인 용혼(龍魂)이 웅장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용혼은 정확히 34번, 문천은 9번 울었다. 산시성 정부 신문처의 장춘량(張存良) 부처장은 "34는 화하의 자손들이 살고 있는 23개 성, 5개 자치구, 4개 직할시, 2개 특별행정구를 합친 숫자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9는 순리와 번영의 숫자이기 때문에 선택됐다고 한다. 23개 성에는 대만성도 포함된다. 여기서도 모두가 같은 조상의 자손임을 강조한 것이다. 헌화에 이어 천 성장이 제문을 읽었다. 전반부에선 황제의 공덕과 자손의 번성함을 고했으며 후반에선 모두가 황제의 자손임을 강조했다. 일부분을 보자.

"사람을 근본으로 삼아, 나라 전체가 조화사회를 이뤘습니다…. 홍콩과 마카오는 이미 우리 품에 돌아왔으며, 대만과 펑후(남중국해의 섬)는 떠나갈 수 없습니다…."

황제를 향한 세 번의 절에 이어 노래와 춤으로 제사는 끝났다. 그러나 화하에서 모인 자손들은 제사상 뒤에 설치된 황제의 초상에 연방 절을 하며 떠날 줄을 몰랐다. 유쾌한 집안 잔치였다. 공제를 앞둔 중국 정부의 준비는 치밀했다. 우선 참석자를 딱 5000명만 뽑았다. 중국의 5000년 역사를 상징하는 숫자다. 외국인의 참석은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특별히 허가받은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했다. 공제 날엔 주변 도시에서 황링현으로 가는 모든 고속도로를 통제했다. 이날 고속도로에는 1㎞ 간격으로 경찰이 배치됐다.

황링현=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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