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덕환의화학이야기

나노기술이 곧 화학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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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노'는 '10억 분의 1'을 뜻하는 말이다. 나노미터(㎚)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만 분의 1이고, 나노초(秒)는 눈 깜짝할 사이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이다. 공간과 시간을 측정하고 제어하는 우리의 능력이 그렇게 작은 것과 짧은 순간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발전했다는 뜻이다.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한 주사터널현미경(STM)과 레이저 덕분이다.

나노기술은 나노미터 크기의 원자나 분자를 다루는 기술이다. 원자 중에서 가장 작은 수소 원자의 지름이 0.1㎚이고, 가장 큰 원자도 0.3㎚를 넘지 않는다. 세상을 구성하는 분자들이 모두 그런 원자들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가장 작은 수소 분자는 0.2㎚이지만, 사람의 세포에 들어 있는 DNA는 무려 1.8m나 된다. 결국 나노기술은 중간 크기 정도의 분자를 다루는 화학기술인 셈이다.

처음 관심을 모았던 나노 입자는 탄소 원자들이 축구공 모양으로 결합된 '풀러렌'과 긴 원통 모양으로 결합된 '나노튜브'였다. 지구상의 생명체를 살아 움직이도록 해 주는 탄소의 새로운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나노튜브는 강철보다 질긴 섬유로 가공할 수도 있고, 뛰어난 특성을 가진 반도체나 초전도체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나노섬유를 이용하면 공상소설에나 등장할 '우주 엘리베이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도 한다.

금속 원자들이 나노미터 크기로 결합된 '나노입자'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금속의 나노입자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단단하고 전기를 잘 통하는 금속 덩어리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화학적.물리적 성질을 나타낸다. 다른 화학물질과의 반응성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다. 금과 은의 나노입자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과장된 주장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분자들이 조직적이고 규칙적으로 모여 만들어지는 나노미터 크기의 구조도 흥미롭다. 나비 날개의 오묘한 색깔과 물에 젖지 않는 특성도 나노 구조 때문이다. 사실 자연의 생물들은 오래전부터 나노 구조를 이용해 왔다. 생물들이 나노 구조를 만들어 내는 화학적인 자기조립과 자기복제의 방법을 흉내 내려는 것이 오늘날 나노기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나노입자나 구조가 작은 것은 사실이지만 화학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사실 화학은 지금까지 나노입자보다 훨씬 더 작은 분자들을 마음대로 합성하고, 변형하고, 활용해 왔다. 나노입자들이 우리 몸속을 마음대로 누비고 다니다가 스마트 폭탄처럼 정확하게 목표물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설명도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개발했던 항생제를 비롯한 의약 물질도 대부분 똑같은 방법으로 효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 의약물질의 분자들은 나노입자보다 훨씬 더 작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나노기술이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만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나노입자가 인체와 환경에 뜻밖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새로 등장하는 나노입자가 너무 작아서가 아니라 인체와 환경에 낯선 물질이기 때문이다. 나노입자의 가능성만큼이나 위험성에 대해서도 심각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