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의광고로보는세상] 분노를 부채질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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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용어 중에 '소구(訴求)'라는 말이 있다. 광고하려는 제품과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욕구나 필요, 천성 등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남보다 잘났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특별한 50분만 모십니다' 유의 광고가 등장하는 것이다. 엄마들은 모두 '내 아이는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이유식 광고는 이런 엄마들의 허영심에 호소한다. 가격을 올렸더니 더 잘 팔린 경우는 인간의 과시욕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흔히 사용되는 소구의 종류에는 가격.품질.자존심.공포.분노.오감.섹스.사랑 등이 있다. 때때로 인간의 분노는 놀랄 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스토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은 노예제도에 대한 분노를 일으켰고 결국 남북전쟁의 발단 중 하나로까지 치달았던 것이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군의 시체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지 않았던가.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의 존슨과 공화당의 골드워터 간의 싸움이었다. 골드워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공군에서 근무했고 당시 보수적 공화주의의 상징으로 평가되던 인물이다. 이런 골드워터를 존슨 진영에서는 '전쟁광'으로 몰아붙였다.

천진난만한 소녀 하나가 데이지꽃이 활짝 핀 숲을 거닐며 놀고 있다. 소녀는 데이지꽃 한 송이를 손에 꺾어 들고 꽃잎을 하나씩 세면서 뜯는다. 하나, 둘, 셋 하며 셈을 세는 소녀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린다. 소녀는 열을 센다. 이때 소녀의 눈이 점점 클로즈업된다. 그러면서 카운트다운을 하는 남자의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마침내 카운트다운이 0이 되었을 때 확대된 소녀의 눈동자 속에서 거대한 버섯구름이 인다. 그리고 굉음과 함께 화면은 온통 핵폭발의 섬광과 구름으로 뒤덮인다.

존슨 진영에서 골드워터를 공격하기 위해 만든 이 사악한 TV 광고는 딱 한 번 방영되었지만 골드워터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골드워터가 대통령이 되면 핵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사랑스러운 자식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켰던 것이다. 의식 있는 광고인들이 소위 '정치 광고'라는 데서 손을 떼는 계기를 만들어 준 광고이기도 하다.

당신이 성적이 나쁜 것은 성적이 좋은 사람들 탓이고 당신이 가난한 것은 부자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결국 분노에 소구하는 것이다. 존슨의 광고처럼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역기능이 있다. 혹시 지금 정부가 사회 양극화를 이런 시각에서 해결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실수를 두 번 되풀이하지 않는다.' 공자가 한 말이다.

김동완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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