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까르푸 … 남은 궁금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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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푸 매장 앞에 늘어선 카트 행렬. [블룸버그뉴스]

까르푸가 한국을 떠난다. 1996년에 들어왔으니 10년 만이다. 왜 정착하지 못하고 떠날까. 까르푸는 이번 매각으로 얼마를 남기며, 이를 국부 유출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는가. 세계 2위의 소매유통업체 까르푸의 한국 철수는 업계에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 토종 할인점에 밀렸다=까르푸가 철수하는 주된 이유로 '토종 할인점에 밀렸다'는 점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점포수에서 밀리고 한국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지 못해 떠난다는 것이다.

이마트로 대표되는 토종 할인점은 '저렴한 가격' 외에 매장 고급화, 편의시설 강화 등 한국식 할인점 문화를 이끌어 왔는데 까르푸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에 전략적 파트너가 없어 소비자 성향 파악을 제대로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사와의 협의 과정에서 부지 매입 등 주요 정책 결정이 느렸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영국계 유통업체지만 99년 진출 초기부터 사장.점장을 한국인으로 임명하는 등 한국적 운영 전략을 펴왔다는 평가다. 까르푸는 초기에 사장과 점장을 외국인으로 임명했다. 산업연구원 백인수 연구위원은 "홈플러스의 상대적 성공은 외국업체가 한국에 들어올 때 국내업체와 제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가 해외에 진출할 때 참고할 점"이라고 말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국내 업체는 매장 진열대 높이가 1.6~1.8m인 반면 초창기 까르푸의 매대 높이는 2.2m로 한국인 체형에 맞지 않았다"며 "소비자가 많이 찾는 식품부문도 취약하고 서비스도 상대적으로 밀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까르푸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매대 높이를 낮추고 점장도 한국인으로 교체하는 등 이른바 '한국식'으로 운영했고 이익도 났다"며 "실패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까르푸의 세계 전략 차원에서 철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국부 유출 논란일까=까르푸는 4일 철수 발표문에서 '론스타와 같이 자본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투자회사는 인수자의 대상에서 배제한다'고 밝혔다. 다분히 론스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국부 유출 논란을 의식한 내용이다. 유통업계 일부에선 '국내 업체가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인수해 외국 업체의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다. 롯데쇼핑.신세계 등 4개사가 인수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인수액은 1조2000억원에서 많게는 2조원을 넘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까르푸의 적정 인수가격은 얼마일까. 애널리스트들은 몇 가지 수치를 근거로 매각 가격을 추정한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말 현재 까르푸의 자산은 1조5881억원(부채 포함), 부채를 제외한 자본은 1조751억원이다. 교보증권 박종렬 애널리스트는 "통상 기업을 살 때 부채를 제외한 자본에 영업권 등을 인정한 프리미엄을 더한 금액이 인수 가격"이라며 "까르푸의 경우 32개 매장의 프리미엄(영업권.브랜드 인지도 등 포함)을 4000억~5000억원으로 본다"고 말했다. 즉 1조5000억~1조6000억원이 넘으면 고가 매각이란 지적이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누가 얼마에 까르푸를 인수하느냐에 따라 국부 유출 논란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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