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정부 인사들 '친정부 사업가'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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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89년 5월 중국 베이징 천안문(天安門) 광장. 장우(19)는 동료 대학생, 시민과 함께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무장 군인들의 유혈 진압으로 수백 명이 숨지고 많은 사람이 투옥됐다. 장은 더 이상 중국에서 살기 어렵다고 판단해 단돈 10만원을 들고 해외로 떴다.

1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장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식품 도매업과 의류 매장을 운영해 이미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 장에게 중국의 대외무역을 총괄하는 상무부 공무원이 "사업 파트너가 돼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중국 제품의 동유럽 판매 창구로 활용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친정부 사업가'로 변신한 장은 "등지고 떠나온 공산독재의 조국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운동권 출신의 이 같은 '변절'은 천안문 사태 이후 국적을 포기한 자국민의 네트워크를 동유럽 시장 확대에 활용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실용주의적 전략 때문에 가능했다.

◆ 천안문 사태가 낳은 이민 사회=5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헝가리에는 지금 동유럽 최대의 화교 사회가 있다. 인구 200만 명의 부다페스트에 4만여 명의 중국인이 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천안문 사태를 전후한 3년간 중국 정부의 강압 통치에 불만을 품고 중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헝가리 정부가 88년부터 중국인의 입국 비자를 면제해준 덕분에 이들 반정부 인사는 헝가리로 몰려들었다. 비자 면제는 92년까지 계속됐다. 91년 한 해에만 2만1000명의 중국인이 헝가리로 이주했다.

벼룩시장에서 생업을 시작한 중국인 이민 사회는 10여 년 만에 헝가리에서 터전을 굳혔다. 부다페스트에서 발행되는 중국어 신문만 4개다. 중국어로 가르치는 초등학교도 있고 중국 식당이 1000여 개에 이른다.

◆ 중국의 동유럽 진출 파트너로=2004년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10개국이 유럽연합(EU)의 신규 회원국이 되면서 중국 정부는 헝가리를 주목했다. 인구 4억 명으로 더 넓어진 EU 시장 진출을 가속하기 위한 교두보로 중국인 커뮤니티가 탄탄한 헝가리가 안성맞춤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요즘 중국 상무부는 과거의 반체제 인사들을 속속 사업 파트너로 끌어들이고 있다. 상무부는 10억 달러(약 1조원)를 들여 부다페스트에 중국 제품을 위한 20만㎡의 전용 무역센터와 사무실 빌딩을 짓고 있다. 이 건물에는 중국 제품 전시장과 중국 기업들의 현지 지사가 입주할 예정이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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