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NYT 같은 복합미디어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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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자들이 일종의 '명제'처럼 언급하는 말이다. 건강한 일류 신문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 여론이 만들어지고, 민주주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일류 신문은 있으며, 신문은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말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한국언론학회와 중앙일보가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 사회와 신문 저널리즘'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4월 7일 '신문의 날' 50주년을 앞두고 이런 문제를 고민해 보고 대안을 찾기 위한 행사다. 신문 저널리즘의 현재를 성찰하는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4월 7일은 '신문의 날' 50주년. 이를 앞두고 한국언론학회와 중앙일보가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신문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발표자들은 건강한 신문이 있어야 한국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김상선 기자

◆ 한국에서도 '뉴욕 타임스' 나와야=첫 발제자로 나선 순천향대 장호순(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신문산업 선진화와 민주주의'라는 주제 발표에서 "신문사들이 미디어 복합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흥보다 규제에 치중해 온 기존의 신문정책을 바꿀 때라고 지적했다. 신문시장의 독과점이 여론의 독과점으로 귀결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지는 등 매체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신문산업이 위기라고 평가되는 상황에서 신문정책도 진흥과 육성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정한 시장 점유율 상한선을 전제로 신문과 방송의 겸영, 신문의 복수 소유, 대기업의 신문 산업 진출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신문산업에도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도록 해 다양한 정보기술(IT)을 뉴스와 정보산업에 접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 소스-멀티 유스'를 해야 세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런데도 유독 신문은 각종 규제에 묶여 IT 발전의 수혜를 누리지 못한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 장 교수는 "한국에도 뉴욕 타임스 같은 미디어 그룹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5년 뉴욕 타임스 매출액은 3조4000억원에 달한다. 한국 전체 신문 시장의 1.5배에 이르는 액수다. 이 신문사는 18개 일간지, 9개의 TV 및 2개의 라디오 방송국, 수많은 잡지와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신문.방송.인터넷을 넘나들며 고급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장 교수는 또 정부의 과감한 신문 지원 정책을 주문했다. "약세 언론에는 과감한 지원을 하고, 구조 개혁을 위해 신문사 간 인수합병, 전국지의 지방 이전, 전국지의 지방지 계열화 등이 가능하도록 제도적.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시적 독자 배가 운동으로는 지금의 신문산업이 겪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며 "범국민적 관심과 정부 차원의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 이념적으로 치우친 신문은 '일류 저널리즘' 불가능=둘째 발제자로 나선 연세대 윤영철(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전환기 한국 신문의 과제-좋은 신문의 조건'의 주제 발표를 통해 언론의 사회적 통합 기능을 강조했다.

윤 교수는 "진보건 보수건 극단적 이념을 멀리하고 편집 정책의 지향점이 중앙 쪽으로 이동할 때 독자들의 가장 큰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적 통합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문이 이념적 정파성에 휩쓸려서는 곤란하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토론자인 상지대 박용규 교수는 "일부 신문의 경우 기존 독자를 잃지 않기 위해 일부러 이념적 극단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문제 제기를 했다.

윤 교수는 "그런 신문은 당장은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도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좋은 신문'이 되기 위해선 이 같은 이념적 중립성 외에 전문성을 크게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세상엔 수많은 정보가 떠돌고 있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검색어를 치면 엄청난 양의 정보가 나온다. 그러나 어떤 정보를 얼마만큼 믿어야 할지 의문이 생긴다. 윤 교수는 '좋은 신문'의 기자라면 정보 인증자(authenticator)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단 정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편견이나 상업적.정파적 이해를 멀리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윤 교수는 "전문성과 정보 검증 능력을 인정받는 스타 기자를 많이 보유한 신문이 일류 신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흥미로운 제안도 했다. "뉴스 메이커들이 정치.사회.경제적 환경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역사 드라마같이 기사를 구성하는 방식"을 시도할 것을 주문했다. 신문사 내부 개혁 문제도 빠뜨리지 않았다. "다양한 언론인들이 성찰을 거쳐 보도 시각을 결정하는 민주적.개방적 조직 문화가 뉴스 품질 향상과 신뢰도 제고에도 공헌한다"는 것이다.

국민대 손영준 교수는 "무색무취한 입장을 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특정 이해관계나 집단에서 분리된 '독립성'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숭실대 김사승 교수는 "디지털 혁명에 따른 뉴미디어 변화, 그에 따른 저널리즘의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일류 신문 있어야 일류 국가 있다"=발표자와 토론자들은 일류 신문이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부분엔 이견이 없었다. 김민환 교수는 "언론은 사회의 목탁이라고 하는데 곳곳에서 너무 많은 목탁 소리가 들려 어지럽다"며 "'좋은 신문'을 갈구하는 목소리는 높은데 아직은 성에 차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신문의 위기는 저널리즘의 위기요, 저널리즘의 위기는 사회의 위기"라고 강조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의 조사를 인용, 방송은 사건의 맥락을 자세히 알려주지 못하고 인터넷 정보는 신문 정보를 빼면 그 양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포털사이트 구글은 하루에 1만4000개 뉴스를 내보내지만 뉴스 종류는 24개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김 위원은 "한국 신문이 정파성을 극복하고 뉴스 가치 판단 기준을 소비자에게 맞추는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 기자<twkim@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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