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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더해가는 외환은 매각 근거 BIS비율 팩스 5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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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03년 8월 27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외환은행 주식 매각 본계약서에 서명한 이강원 당시 외환은행장(왼쪽)과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 [중앙포토]

감사원은 5일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현 한국투자공사 사장),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현 보고펀드 공동대표), 김석동 전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장(현 재경부 차관보)을 소환해 조사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해 당시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조작이나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승인 등과 관련된 의혹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련 의혹을 규명하는 데 핵심 단서가 될 의문의 팩스 5장의 정체가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외환은행의 2003년 말 BIS 비율을 6.16%로 전망한 내용의 이 팩스는 외환은행 매각의 근거가 됐지만 이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사망했고, 외환은행 매각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이 팩스를 "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2003년 외환은행 이사회에서 이사 중 상당수가 매각 가격이 낮다며 매각 조건에 대해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의문의 팩스=이날 감사원에 소환된 변양호 전 국장과 이강원 전 행장은 "그런 팩스를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실무자들이 알아서 챙기는 자료라는 것이다.

외환은행은 당시 팩스를 작성해 금감원에 발송한 실무자가 허모 차장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그는 지난해 간질환으로 사망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금감원 보고 자료는 은행 부장급 이상 간부가 직접 방문해 전달하는 게 관행"이라며 "팩스로 전달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감사원 관계자는 "팩스 원문은 허모 차장 컴퓨터에서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현재 BIS 비율 산정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따져보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 "예금 인출사태 날까봐 사실 공개 안 했다"=변 대표는 이날 소환에 앞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BIS 비율은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며 "사실대로 공개하면 예금 인출사태가 날 상황이어서 공개할 수 없었지만 론스타 자금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4.4%가 나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개 매각을 하지 않고 론스타에 넘긴 이유에 대해 "공개 매각을 하려면 정확한 정보를 알려야 하는데 그러면 실상이 알려져 가치가 더 떨어졌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그렇다면 정확한 BIS 비율을 숨겼다는 것인데 공시제도의 신뢰성은 어떻게 되며, 공시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의 손해는 어떻게 되느냐"고 반박했다. 그는 또 "만약 공시가 허위였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할 위치에 있었던 변 대표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 이사회 "매각조건 반대"=외환은행 이사 중 상당수는 2003년 7월 28일 열린 이사회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매각조건에 이의를 제기했다. A이사는 "단순히 회계법인의 실사 결과에 따른 장부가만 가지고 매각할 수 없다"며 "경영권을 넘길 때 프리미엄이 얼마인가는 대단히 신중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B이사도 "경영권을 수반한 주식가격은 시장 주가에 30%가량의 프리미엄이 있다"며 "주가가 3850원(당시)이므로 매각가는 액면가인 5000원 수준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론스타에 넘겨줄 신주를) 액면 이하로 발행했을 때 상속.증여세법상 부당행위로 인정되는데 이사들이 부당행위 수준까지 승인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 이달용 부행장이 장부가 등을 고려해 신주 발행가를 4000원으로 정하면 된다는 보고자료를 제출한 것과 관련, D이사는 "미리 단정적으로 (발행가격이) 4000원을 넘어가면 (론스타와의) 협상이 깨진다는 생각으로 협상에 임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다.

이에 대해 이강원 전 행장은 "외환은행 경영권을 론스타에 넘기는 게 아니라 외자유치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사들의 문제 제기는 모두 의견에 그쳤고, 같은 해 8월 27일 이사회에서 외환은행 매각이 확정됐다. 신주 발행가격은 액면가보다 20% 할인된 주당 4000원으로, 구주 매각가격은 5400원으로 결정됐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을 조사해온 국회 문서검증반 소속 최경환 의원은 "결국 회계법인의 자산실사 결과 계산된 가격대로 외환은행이 론스타로 넘어갔다"며 "매각이 확정된 뒤 6명의 이사들은 퇴임하면서 모두 12만 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동호.최현철.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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