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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때문에 사람을 못 끊는 거야", 영화 '렛 더 선샤인 인'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31) 영화 ‘렛 더 선샤인 인’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사랑이 잘 안 돼. 떠올려 봐도 피부를 비비고 안아봐도. 입술을 맞춰도 참. 생각대로 되지 않아' 아이유와 오혁이 함께 부른 '사랑이 잘'이란 노래 가사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제일 먼저 생각난 노래였는데요.

모든 영화와 드라마 또는 가사의 단골 주제인 ‘사랑’. 사랑이 뭔지. 뭔데 이렇게 사람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게(김인육 시인의 사랑의 물리학 중에서)’ 만드는 걸까요.

남자 1호 돈 많은 유부남 은행원(자비에 보부아)과 이자벨(줄리엣 비노쉬). [사진 씨네룩스]

남자 1호 돈 많은 유부남 은행원(자비에 보부아)과 이자벨(줄리엣 비노쉬). [사진 씨네룩스]

남자나 여자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자신만을 사랑해줄 단 한 사람의 운명의 상대를 찾는 건 다 똑같은가 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요.

한 번의 이혼의 아픔을 가진 이자벨(줄리엣 비노쉬 분)은 진짜 사랑을 찾기 위해 오늘도 '누군가'를 만납니다. 운명인가 싶다가도 멀어지는 그들에게 번번이 상처받는 건 바로 이자벨 자신인데요.

영화에서는 총 7명의 남자가 등장합니다. 아내가 있는 돈 많은 은행원, 결정 장애를 가진듯한 연극배우, 이혼한 전 남편부터 만날 때마다 자신의 별장에 초대하겠다며 치근덕대는 남자까지. 누가 더 찌질(?)한가 대결이라도 하려는 듯 하나같이 진상인 그들은 일단 그녀의 '운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남자 2호 우유부단한 연극배우(니콜라스 뒤보셸)와 이자벨. [사진 씨네룩스]

남자 2호 우유부단한 연극배우(니콜라스 뒤보셸)와 이자벨. [사진 씨네룩스]

나는 사랑인 것 같았는데, 그는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반대로 그가 먼저 사랑이라 말했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사랑이 아니었죠. "네가 상처받았다고 왜 나에게 상처를 줘"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이렇게 영화는 남녀 사이에 생기는 사랑의 온도 차이와 속도 차이에서 생기는 고통과 상처를 잘 담아 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각본을 쓴 클레어 드니와 크리스틴 앙고의 실제 경험이 반영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제시한 '사랑과 욕망의 극심한 고통'이라는 주제로 서로의 경험담을 공유해나가며 작품을 완성해 나갔는데요.

이때 클레어 드니는 '고통'이라는 단어에 대해 "누군가가 사랑에 대한 문제로 앓고 있음을 설명하는 매우 멋지고 자신 있는 언어"로 재해석했습니다. '고통'이라는 단어와 '매우 멋지고 자신 있는 언어'라는 문장이 잘 안 어울리긴 하지만, '고통을 통해 좀 더 성장한다'는 의미로 쓰이지 않았을까 (나름) 생각해봤습니다.

영화 '렛 더 선샤인 인'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의 대표작 『사랑의 단상』을 재해석 했다. [사진 씨네룩스]

영화 '렛 더 선샤인 인'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의 대표작 『사랑의 단상』을 재해석 했다. [사진 씨네룩스]

영화에서 돋보인 점은 바로 음악이었습니다. 클레어 드니 감독은 평소 시나리오 작업 시 꼭 음악을 참고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런 그녀와 오랫동안 작업해온 스튜어트 스테이플스는 이번 영화 속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곡했다고 합니다.

이번 작업이 그에게 더욱 흥미로웠던 건 기존의 영화 작업이 음악이 이미지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중심에서 이미지를 컨트롤했다는 점이라 전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사벨이 택시를 탔을 때 흐르던 음악과 상대 남자와 블루스를 출 때 나오던 음악이 그가 말한 데로 이미지를 컨트롤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 소개하고 있지만, 저는 로맨틱하지도 그렇다고 코미디 하지도 않았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처절하다고 할까요? 남자에게 상처받고 돌아온 이자벨이 눈물 젖은 눈으로 창밖을 보며 “나도 사랑을 하고 싶어, 진짜 사랑을….” 이라 혼잣말하는 장면에서는 어쩐지 측은하고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굳이 그런 상대를 찾을 필요가 있나 싶었죠.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 되지….

사랑 때문에 고통받는 이자벨 역을 100%로 소화한 줄리엣 비노쉬. [사진 씨네룩스]

사랑 때문에 고통받는 이자벨 역을 100%로 소화한 줄리엣 비노쉬. [사진 씨네룩스]

마지막 16분가량은 역술가(제라르 드빠르디유 분)를 찾아간 이자벨과의 대화로 이루어집니다. 이도 저도 뭐가 안될 땐 신의 도움을 받으려 하죠? 엔딩크래딧과 함께 이어지는 장면은 이자벨이 묻고 역술가가 답하는 장면입니다. 딱 하루 동안 촬영한 이 장면은 줄리엣 비노쉬와는 두 테이크를, 제라르 드빠르디유와는 세 테이크를 촬영했다고 합니다. "단 한 컷도 자를 수 없었다'던 감독의 말처럼 두 배우가 보여준 앙상블이 인상적입니다.

긴 대화 끝에 나온 결론은, 당신만의 특별한 인생의 여정을 찾으라는 것!
"여세요, 모든 상황에 마음을 열어두세요. 당신만의 특별한 인생의 여정을 찾아가세요. 그러면 아름다운 마음의 햇살을 보게 됩니다."
역술가의 말처럼 아직도 진짜 사랑을 찾고 있다면, 자신만의 인생을 걸어보세요. 걷다 보면 나와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사랑 때문에 사람을 못 끊는 이자벨이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사랑을 찾길 바라며.

렛 더 선샤인 인

영화 '렛 더 선샤인 인' 포스터. [사진 씨네룩스]

영화 '렛 더 선샤인 인' 포스터. [사진 씨네룩스]

감독: 클레어 드니
각본: 클레어 드니, 크리스틴 앙고
출연: 줄리엣 비노쉬
촬영: 아그네스 고다드
음악: 스튜어트 스테이플스
장르: 로맨스

상영시간: 95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8년 4월 26일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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