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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좌충우돌 ‘명랑 언니’가 살아가는 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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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32면

그 여자 공감사전

그 여자 공감사전

그 여자의 공감사전
이윤정 지음, 행성B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나잇값’ 못하는 50세라는 필자에게서 인생의 성공 비법을 기대하지 말자. 아프니까 00이다, 라며 위로를 빙자한 훈수를 두는 책도 아니다. 절반쯤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고백인데 웃음과 연민을 참을 수 없는 것은 ‘그 여자’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반사하는 내 모습 때문이다.

중앙SUNDAY에 정기 연재한 에세이를 모은 신간은 고양이·기억력·지난날 같은 단어를 ‘그 여자’만의 방식으로 정의해서 들려준다. 이 언니, 좌충우돌인데 취향 확실하고 속물스러운 허세와 질투도 숨기지 않는다. 가령 ‘무작정’이란 연휴 전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끊고 떠난 ‘대책 없는 여행’ 같은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낯설어 보는 즐거움만 읊었다면 상투적이겠지만 알고 보면 그런 무모함이 ‘젊은 시절에 마음껏 여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의 초조함’이라고 자가 진단도 한다.

‘부암동’에는 도심 속 산골 동네의 여름 낙화만 있는 게 아니라 소름 돋는 돈벌레·딱정벌레도 우글거린다. ‘봄’은 생명과 가족을 연상시킬 뿐 아니라 한 시대의 상처를 새긴 낱말이다. 그렇게 짚어보는 단어 속에 동시대 문화·사회가, 그와 함께 성장해온 불완전한 개인주의자가 그려진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독서법은 나만의 사전을 상상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돌아보면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허둥대게 만들었다. ‘처음’이라는 단어에서 그 여자는 “인생 처음으로 늙어가고 있다. 늙는 것은 두렵지만 ‘처음’이기에 설렌다”고 썼다. 완벽하진 않지만 부끄러울 것도 없는 생을 ‘처음’으로 위안받고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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