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레임덕 피하기 위하여 임기 중 반일 강경론 포기 않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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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저조에 허덕이는 노무현 정권은 지지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반일 강경 정책을 남은 임기 중에도 계속할 것이다."

"노 정권은 독도를 소재로 내셔널리즘을 부채질하고 있다."

독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대일 외교 정책에 대한 일본 정부의 내부 분석을 담은 보고서를 본지가 단독 입수했다. 외무성의 정세분석자료 '조선반도를 둘러싼 움직임(1월 25일자)'은 한국 정부의 대일 정책을 국내용으로 폄하하고 독도 관광 개방을 '과격한 시위 행위'로 표현하는 등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외비 자료인 까닭에 보고서에 사용된 용어도 매우 자극적이다.

외무성 보고서는 한국의 한 여론조사기관이 조사한 노무현 정권 지지율 변화를 해설하면서 "한국에서는 반일이 정권의 지지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년반 동안 노 정권 지지율은 줄곧 20%대에 머물렀지만 대통령 본인이 '3.1절 연설'과 '국민에게 드리는 편지'를 통해 강한 반일 자세를 밝힌 시기에만 예외적으로 40% 가까이 육박했다는 것이 그 근거다. 보고서는 이를 토대로 "노 대통령은 레임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임기 중에 반일 강경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또 "군사독재 시절 '북괴 위협'과 '반일'을 구실로 한 여론조작은 민주화 운동을 견제하는 상투수단이었다"며 "이제는 '대북관계 개선'과 '반일'이 한국의 여론을 들끓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특히 독도 문제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면서 ▶독도 관광 개방▶공군참모총장의 독도 상공 비행▶각료.국회의원의 독도 상륙 등 한국의 독도 영유권 강화 정책을 '과격한 시위행위'로 표현했다.

"우리나라(일본)와 국제사회를 향해 이 같은 신경질적 시위를 계속하는 것이 그리 의미 있는 행위로 보이지 않는다"는 해설도 덧붙였다. 이어 "시위 행위의 목적은 한국 국내여론을 선동하는 것"이라며 "독도를 소재로 내셔널리즘을 부채질하면서 한.일 관계를 악화 상태로 유지함으로써 반일강경책의 효과를 계속 유지해 나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쉽게 들끓는 한국적 정서의 무분별한 발로"란 표현도 썼다.

보고서는 이 같은 정책의 배경에 대해 "노무현 정권의 정치 수법이 국제관계에서도 드러난 것"이란 해석을 내렸다. "노무현 정권은 모든 국면에서 의도적으로 '악자(惡者)'를 만들고, 이 악자와의 대립을 통해 자신이 정당함을 호소하는 정치 수법을 쓰고 있다"고 전제한 뒤 "전반적으로 일본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악자로 증폭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또 한국 외교당국자들의 동향에 대해 "한때 한.일관계 냉각에 위기의식을 가졌으나 지금은 청와대의 강경자세 앞에서 더 이상 저항할 수단을 잃은 듯하다"며 "고이즈미 정권 동안 한.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비관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이런 때일수록 양국 국민 간의 교류를 확대하고 상호이해와 우호를 깊게 함으로써 한국에서 '반일'이 갖는 마술적 힘을 줄여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가 역사인식 문제의 엄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독도는 일본 내 역사학자 중에서도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리한 주장이고, 외교"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내부문서라고는 하지만 다른 나라의 내정까지 끌어다 자의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서울=박승희 기자

◆ 일본 외무성 한반도 정세 보고서=일본 외무성의 한반도 담당 부서인 북동아시아과가 정기적으로 작성하는 정세 보고서로, '취급주의'로 분류되는 대외비 자료다. 6자회담과 남북관계, 북한 정권 내 동향 등이 주요 내용이다. 보고서는 총리비서실과 외상을 포함한 외무성 주요 간부, 한국.미국.중국 등 주요국에 파견된 공관장들이 열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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