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이 소방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병 높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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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마친 뒤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리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신고 전화를 통해 욕설을 듣는 상황 이미지 [중앙포토]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마친 뒤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리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신고 전화를 통해 욕설을 듣는 상황 이미지 [중앙포토]

소방관들이 감정노동을 겪었을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병률이 8배 높아진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9일 분당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 김정현 교수와 박혜련 임상심리전문가 연구팀은 '소방관의 감정 노동이 소방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발표하고 이같이 밝혔다.

연구팀은 경기도 소방공무원 7190명을 대상으로 소방관의 정신 질환 및 위험 요인을 조사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최근 외상성 스트레스 사건을 경험한 소방관 가운데 감정 노동을 경험한 소방관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더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외상성 스트레스 사건은 자살자를 수습하거나 동료의 사망을 목격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또 감정 노동은 욕설을 듣거나 무리한 요구를 받아도 참고 넘어가는 행위로 정의했다.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외상성 스트레스 사건만 경험한 그룹의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 평균 지수는 3.2점이었다. 하지만 감정노동까지 겪은 그룹의 경우 평균 지수가 27.1에 달했다. 감정노동 경험이 정서적 손상을 입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병률을 높인다는 의미다.

그동안 연구에서는 사고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병이 높다는 사실만 밝혀져 왔다. 아울러 소방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원인으로는 주로 신체적 사고의 위협에 노출됐다는 점이 강조됐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감정 노동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실제 지난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소방공무원 인권 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소방관의 37.9%가 언어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특히 구급구조 요원들의 경우 감정노동 경험이 81.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김정현 교수는 "소방공무원들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서는 감정 노동의 부담을 줄여서 그로 인한 정서적 고통을 감소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감정 노동에 대한 치료적 개입과 함께 119 서비스 수혜자들의 폭언 및 부당한 요구로부터 소방공무원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통합정신의학(Comprehensive Psychiatry)’ 최신호에 게재됐으며 2018년 상반기 편집장 추천(Editor's Choice) 논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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