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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할 뿐” 쉬운 법문으로 외국인 불제자 5만명 키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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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호 28면

[금강 스님의 '달마산 편지'] 숭산 스님

숭산 스님은 종종 미국 켄터키주 겟세마네 수도원을 찾아 법회를 열고 가톨릭 수사들과 함께 참선을 하기도 했다. [사진 대봉 스님]

숭산 스님은 종종 미국 켄터키주 겟세마네 수도원을 찾아 법회를 열고 가톨릭 수사들과 함께 참선을 하기도 했다. [사진 대봉 스님]

산사의 새벽공기에 어느새 부드러운 봄 내음이 묻어있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고요하게 앉아 가부좌를 틀고서 호흡을 고른다. 내쉬는 호흡에 잠깐 들어온 생각들을 밖으로 따라 보낸다. 들이마시는 호흡에 밝고 고요한 자리로 마음을 챙긴다. 봄 철새들의 고운 목소리들이 벌써부터 분주하다. 이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는 자 누구냐? 오직 모를 뿐!

미국·프랑스·남아공·구소련 등 #세계 곳곳 노동·참선 병행 선 센타 #도심 속 수행 공동체 모델 만들어 #예일·하버드 출신 제자 현각 #“모든 것 버렸지만 참스승 만났다”

미국에서 참선을 배우기 위해서 무작정 온 청년 체이스는 아침 공양 목탁 소리가 들릴 때까지 대웅전에서 오롯이 앉아 있다. 미국인인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졸업하자마자 미황사를 찾아 왔다.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어도 떠나지 않아 하루는 1000배를 시킨 뒤 오계(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음주를 금함)를 다짐하게 했다. 머리를 깎고 ‘선림(禪林)’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또 3주 전 독일에서 온 29살의 안나페이는 아침저녁 예불과 참선을 따라 하고 낮에는 객실 청소를 자청하며 미황사에 계속 머물고 있다.

미주나 유럽에서 한국불교의 참선 수행과 사찰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1년에 500명씩 땅끝마을 미황사를 찾는다. 요즘에는 외국인들이 2, 3일 체험을 계획하고 왔다가 1주일 이상 머물다 가는 일이 잦다.

한국의 참선과 사찰의 무엇이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일까. 한국 선불교의 전통을 미국과 유럽에 체계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분이 숭산(1927~2004) 스님이다. 숭산 스님을 생전에 직접 찾아뵙지 못한 것을 늘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2004년 12월 4일 예산 수덕사 다비장에서 숭산 스님의 법구가 빗속에 활활 타오르던 그때서야 ‘아, 내가 너무 늦게 큰 스승을 뵈었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큰 스승과 동시대에 살면서도 직접 법을 구하지 못했음을 한탄했다.

“자기 자신을 100% 믿어라” “오직 할 뿐” “나는 단지 ‘오직 모를 뿐’만을 가르친다” 등은 숭산 스님의 법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간단명료한 일상어는 푸른 눈 외국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미국을 비롯하여 일본·홍콩·캐나다·스페인·프랑스·남아프리카공화국·폴란드·구소련 지역 등을 다니며 5만 명이 넘는 외국인 제자들을 길러냈다.

숭산 스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제자인 무상사 대봉 스님을 찾아갔다. “제가 26살(1977년) 때 뉴욕의 뉴헤이븐 선원에서 3일 동안 참선하면서 숭산 스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아! 내 모든 인생을 맡길 스승님을 만났구나 생각했습니다. 스님은 나의 뿌리입니다. 숭산 스님이 떠난 지 14년이 흘렀지만 항상 같이 사는 것 같습니다.”

폴란드 바르샤바 선원에서 제자들에게 강론하는 모습. [사진 대봉 스님]

폴란드 바르샤바 선원에서 제자들에게 강론하는 모습. [사진 대봉 스님]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예일대와 하버드 대학원을 나와 숭산 스님의 제자가 된 현각 스님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것을 버렸지만 진정한 스승을 만났습니다. 바깥세상은 언제나 변합니다. 여기에 집착해 자기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하면 오직 고통만 있을 뿐입니다. 진정한 자기를 찾아야 합니다.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다면 하루 10분 만이라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 수행을 해 보세요. 오직 수행, 수행하는 일만이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을 고통의 바다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인 1927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숭산 스님은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 헌병대에 잡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 뒤 동국대 국문학과를 다니다 출가했고, 출가한 지 열흘 만에 원각산 부용암에 들어가 100일 동안 솔잎만 먹고 극한 수행을 하여 공부의 힘을 얻었다고 한다. 한국 근대불교의 큰 선맥인 경허-만공-고봉 스님으로 이어지는 법을 이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대학, 브라운대학 학생들과 첫 참선을 시작했다는 글을 읽고 3년 전 숭산 스님의 자취를 찾아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프로비던스 젠센터까지 찾아갔던 일이 있다. 숭산 스님이 프로비던스 젠센터를 어떻게 일궈갔는지 그 과정의 일화가 세계일화에 소개돼 있다.

“학생들이 자꾸 선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혼자서 죽비를 탁탁 치고 앉아 있으면 그들도 옆에 와서 그냥 앉아 있었다. 매주 일요일 방안이 꽉 찼다. 50명, 60명, 90명 이렇게 늘었다. 밥도 주고, 좌복도 만들고, 방세도 내다보니 돈이 떨어졌다. 낮에는 세탁소 기계수리공으로 취직하여 돈을 벌고, 아침과 저녁으로는 학생들과 예불하고 참선을 했다.”

이런 반농반선(半農半禪·노동과 참선의 병행)이 숭산 스님이 세계 곳곳에 세운 선 센터의 기본 틀이 되었다. 언젠가 도심에서 선 수행 도량을 만든다면 숭산 스님을 롤 모델로 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형태가 발전하면 각 가정이 선센터가 되고, 가족이 수행자의 모임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함께 음식도 만들고, 차도 마시고, 좌선도 하고, 지혜와 자비를 이야기하는 수행의 모임이 가정과 직장에서 이루어진다면 경쟁과 갈등은 사라지고 평화롭고 행복한 삶이 눈 앞에 펼쳐지지 않겠는가. 스님은 그런 모습을 그리며 도심 속에서 현대인들이 수행과 일을 함께하는 공동체 모델을 이미 만들어놓은 것이다.

“나무는 무슨 색깔인가, 푸른색입니다. 나무에 물어보았는가, 묻지는 않았습니다. 나무가 푸르다는 것은 네 생각이지 나무 생각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습니까? 나무와 하나가 되어라, 열심히 수행하면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숭산 스님과 제자의 대화이다. 세계일화(世界一花). 흰 얼굴, 검은 얼굴, 노란 얼굴들과 수많은 눈동자가 하나 되어 아름다운 연꽃 한 송이 피어 올린 삶을 사셨던 숭산 스님. 언젠가부터 많이 닮고 싶은 분이다.

금강 스님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해남 미황사 주지. 달라이라마방한추진회 상임대표. 실직자단기출가수련회·무문관·참사람의 향기 등에서  20년간 선 수행 지도. 저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물 흐르고 꽃은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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