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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데자뷰… "시리아 인근 해상에 미 미사일 구축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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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7일 지중해에 있는 미해군 구축함 포터에서 시리아를 향해 발사되는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신화=연합뉴스]

지난해 4월 7일 지중해에 있는 미해군 구축함 포터에서 시리아를 향해 발사되는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신화=연합뉴스]

“(시리아 화학무기 민간인 살상 의혹은) 인류에 대한 끔찍한 모욕이다. 레드라인과 많고 많은 선을 넘은 것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의한 이러한 악랄한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2017년 4월 5일 백악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시리아 정부군 화학무기 사용 강력 성토 #"군사적 옵션 많다…24시간 내 중대 결정" #러시아, 아사드 정권 옹호 "군사 공격 땐 중대 파장" #'포스트 시리아전' 두고 서방 vs 러 힘겨루기 격화

“우리가 목도한 이러한 잔혹 행위를 그냥 놔둘 수 없다. (화학무기 공격의 주체가) 러시아인지, 시리아인지, 이란인지, 혹은 모두가 함께한 것인지 알아낼 것이다. (책임 있는) 모두가 대가를 치를 것이다."(2018년 4월 9일 백악관 군 지휘관 회의 후)

꼭 1년 만에 시리아 인근 지중해 해상의 미 해군 구축함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과 관련, 군사 타격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다. 지난 7일 시리아 반군 지역인 동구타 두마에서 사린가스나 염소가스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격을 받아 주민 70여 명이 숨진 데 대한 응징의 성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각료회의에서 “우리는 상황을 조사하고 있고 군 수뇌부와 논의하고 있다"며 “군사적 옵션이 많다. 앞으로 24~48시간 이내에 중대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군사적 대응을 콕 집어 묻자 “모든 것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초강경 매파'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초강경 매파'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AP=연합뉴스]

상황은 여러 모로 ‘데자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주 칸셰이칸 지역에서 아사드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으로 80여명이 숨진 지 사흘 만인 4월 6일 시리아 알샤이라트 공군기지 공습을 감행했다. AP통신은 "당시 공습에 동원됐던 토마호크 미사일을 장착한 구축함 도널드 쿡이 트럼프의 명령만 떨어지면 작전 수행 가능하도록 지중해에서 대기 중"이라고 이날 전했다. 지난해 작전에 사용됐던 구축함 포터도 시리아에 며칠 내로 도착할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국방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눈에 띄는 것은 트럼프가 시리아 사태에서 아사드 정권의 최대 후원자인 러시아와 이란의 공동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아마도 그럴 것인데, 만약 책임이 있다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엔 화학무기 공격 주체가 시리아 정부군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면 이번엔 화학무기 사용 자체를 부인하는 분위기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우리 군사 전문가들이 해당 지역을 방문했지만, 염소가스나 다른 화학물질이 민간인에게 사용됐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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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군사행동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9일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군사공격을 한다면 중대한 파장이 생길 것"이라면서 "러시아 군대는 시리아의 정통성 있는 정부 요청에 따라 배치돼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러시아 국영매체는 이날 새벽 시리아 중부 홈스주에 있는 T-4 공군기지를 공습한 주체가 이스라엘군 F-15 전투기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란 병력을 포함해 최소 14명이 사망한 이번 폭격에 앞서 이스라엘은 미국에 관련 계획을 사전 통보했다고 NBC가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반면 러시아는 폭격에 대해 미리 통보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의 강력한 수사(修辭)에도 불구하고 시리아에 대한 군사 옵션에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으로선 1년 만의 공습이 지난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공습 상황실에 참석한 백악관 참모진.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공습 상황실에 참석한 백악관 참모진.

지난해 알샤이라트 공습은 시리아 정부군에 일시적 경고음을 울리긴 했지만 상황을 뒤집진 못했다. 이슬람국가(IS)가 패퇴한 이래 승승장구한 정부군은 현재 반군 장악 지역 90% 이상을 확보해 7년여에 걸친 내전을 마무리하는 단계다. 미국이 한 발을 뺀 상황에서 아사드를 지원해온 러시아와 이란은 사실상 승전국을 자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조차 수일 전 “중동 문제로 지금까지 7조 달러를 낭비했다”며 “시리아에서 곧 철군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따라서 미국이 시리아에 대한 개입 목소리를 다시 내는 것은 '시리아 내전 이후'가 러시아와 이란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게 하려는 경고 차원이 크다. 지난해 알샤이라트 공습 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전 세계가 트럼프 대통령의 힘과 결의(strength and resolve)를 지켜봤다"고 말했다. 당시 북핵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는 대북 군사옵션의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으로도 해석됐다.

외신들은 미국이 다시 시리아에 공습한다 하더라도 영국·프랑스 등 동맹국과 군사 공조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와 연일 통화하며 “강력한 공동 대응”(백악관 발표)을 다짐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9일 덴마크 방문 중에 “(화학무기 공격이 사실이라면) 정권뿐 아니라 후원자, 즉 러시아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10일 소집될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진상 조사 결의안 외에 러시아도 독자 결의안을 낼 것이라고 전했다.

 서방과 러시아는 2016년 미 대선 개입 논란에 이어 영국 거주 러시아 이중스파이 부녀에 대한 독극물 공격 사건으로 외교관을 맞추방하는 등 대립해왔다. 시리아 화학무기 갈등은 여기에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있다.

9일(현지시간)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을 다루기 위해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AF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을 다루기 위해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AFP=연합뉴스]

하지만 미국이 시리아 문제로 러시아에 직접적으로 군사행동을 벌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NYT는 미국이 이란 관련해선 이라크 영공을 통과하는 이란 공급기 타격 등 군사 옵션을 갖고 있지만 러시아에 대응해서 병력을 사용할 생각이 없다고 고위 관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대신 러시아에 책임을 지울 다른 옵션이 논의되는데 “더 강한 경제 제재나 외교 고립”이라고 전했다.

시리아 문제는 이날 공식 업무를 시작한 존 볼턴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대북 문제 등에서 초강경 매파로 분류되는 볼턴 보좌관은 이날 별다른 언급 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 발언을 하는 동안 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볼턴은 버락 오바마 정권 땐 시리아전 개입에 반대했지만 지난해 공습 땐 "트럼프가 옳다"면서 찬성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강혜란 기자, 런던=김성탁 특파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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