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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리아에) 중대 결정 임박" 군사공격 거론하자 러 맞대응 시사

중앙일보

입력

시리아 정부군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화학무기 공격을 계기로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가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각료회의에서 러시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을 트럼프 대통령이 논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각료회의에서 러시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을 트럼프 대통령이 논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대 결단이 임박했다며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맞대응을 시사한 가운데 이스라엘이 러시아ㆍ이란군도 주둔해 있는 시리아 중부 비행장을 폭격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 놓고 미·러 관계 최악의 상황 #러시아 외무 "민간인에 화학무기 공격 증거 없어" #이스라엘, 시리아 비행장 폭격 전 미국에 사전 통보 #백악관 "러 도움 없이 아사드 정권 화학무기 못 만들어"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각료회의를 주재하면서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공격부터 성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상황을 조사하고 있고 군 수뇌부와 논의하고 있다"며 “앞으로 24~48시간 이내에 중대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화학무기 공격을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악랄한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공격의 주체가) 러시아인지, 시리아인지, 이란인지 또는 이들 모두가 함께한 것인지 매우 빨리 알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초강경 매파'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초강경 매파'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대응은 테이블에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든 것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고 답했다. 특히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하려던 입장도 중대 결정을 내리며 다시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그럴 것인데, 만약 책임이 있다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지역에 화학무기 공격을 가하자 지중해에 있는 미 해군 구축함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59발을 시리아 공군기지를 향해 발사했었다. 미국 정부는 피해자들의 영상 등을 통해 공격에 사용된 화학물질이 신경작용제인 것으로 판단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2017년 4월 7일 지중해에 있는 미해군 구축함 포터에서 시리아를 향해 발사되는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신화=연합뉴스]

2017년 4월 7일 지중해에 있는 미해군 구축함 포터에서 시리아를 향해 발사되는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신화=연합뉴스]

 하지만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우리 군사 전문가들이 해당 지역을 방문했지만, 염소가스나 다른 화학물질이 민간인에게 사용됐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이날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미국과 러시아는 정면 충돌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시리아군을 지원하는 러시아가 손에 시리아 아이들의 피를 묻혔다"며 “유엔 안보리가 행동하든 않든 미국은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날조된 구실 아래 군사력을 사용한다면 중대한 반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화학무기 공격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 [EPA=연합뉴스]

바실리 네벤쟈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 [EPA=연합뉴스]

 시리아 반군 지역인 동구타 두마에서는 사린가스나 염소가스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격을 받아 주민 70여 명이 숨지고 500명 이상이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 구호단체들이 폭격을 피해 지하실에 숨어있던 수백여명에게 다가가고 있어 사상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유엔 안보리에서 프랑스 측은 지하 공간에까지 스며들게 하기 위해 화학무기가 사용됐다는 분석을 밝히기도 했다고 BBC가 전했다.

 네벤쟈 대사는 화학무기 금지기구가 조사를 위해 조속히 시리아를 방문한다면 러시아군이 공격이 이뤄졌다는 곳까지 안내하겠다고 말하며 배수진을 쳤다. 그는 “러시아를 향한 어조가 냉전 시절에도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할 수준까지 높아졌다”며 “합법적 정부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는 시리아에 대한 군사력 사용은 문제"라고 말했다.

화학 무기 공격을 받은 시리아 아이들. [AP=연합뉴스]

화학 무기 공격을 받은 시리아 아이들. [AP=연합뉴스]

 이날 새벽 시리아 중부 홈스 주 T-4 공군기지를 공습하기 직전 이스라엘은 미국에 관련 계획을 사전 통보했다고 NBC가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반면 러시아는 폭격에 대해 미리 통보받지 못했다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궁 대변인이 밝혔다. 그는 공습 당시 기지에 러시아 군사고문이 머물고 있었을 수도 있다면서 “우려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서방과 러시아는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논란에 이어 영국 거주 러시아 이중스파이 부녀에 대한 독극물 공격 사건으로 외교관을 맞추방하는 등 대립해왔다. 여기에 시리아 화학무기 갈등이 겹치면서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을 다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AFP=연합뉴스]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을 다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AFP=연합뉴스]

 두마에 있던 반군이 북부 지역으로 옮겨가기로 해 시리아 정부군은 동구타 지역을 접수하게 됐다. 2016년 알레포 함락 이후 알아사드 정권의 최대 규모 승리다. 하지만 미국의 결정에 따라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화학무기 사용을 레드라인(한계선)으로 규정한 서방 세계는 “전쟁범죄”라는 표현을 써가며 분노를 표하고 있다.

이날 북서부 이들리브에서는 건물이 폭발로 파괴되면서 13명이 숨졌다고 구호단체가 전했다. 폭발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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