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권 회사에 팔아 수십 억원 받은 대기업 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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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현호의 특허로 은퇴준비(5)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아파트 가격 담합' 유인물. 현재는 모두 사라졌다. [사진 김기환 기자]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아파트 가격 담합' 유인물. 현재는 모두 사라졌다. [사진 김기환 기자]

최근 서울에서 한 부녀자 회의의 아파트 가격 담합 행태가 논란이 되면서 지탄의 목소리가 높다. 가격 담합은 상품의 시장 가치를 왜곡시키는 불공정 거래 행위이기는 하지만 담합의 주체가 기업이 아닌 개인이어서 공정거래법 상 처벌을 할 수 없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아파트를 포함한 상품의 정상적인 가치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 때문에 결정된다. 그렇다면 무형의 재산인 특허권의 가치는 어떻게 산정될까?

로열티 공제법에서부터 시장 접근법, 수익 접근법, 원가 접근법 등 특허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법은 다양하다. 또 각각의 가치 평가 기법에서 평가 변수 또한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특허를 두고도 평가자에 따라, 또는 평가의 의도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아직은 특허 거래 시장이 활성화하지 있지 않기 때문에 특허의 시장 가치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근 한  IT 기업 임원이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을 자신이 몸담은 기업에 이전하며 특허 거래 대금으로 수 십 억원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이전의 글에서 설명했듯이 만약 그 임원이 수 십 억원을 급여나 상여금으로 받았다면 막대한 소득세를 납부해야 했겠지만, 특허 거래 소득은 높은 경비율로 인해 상대적으로 세 부담이 적다.

만약 위 사안에서 특허의 실제 가치가 수 십 억원에 달하지 않는다면 해당 임원은 물론 기업은 세무 조사뿐만 아니라 형사처벌의 대상이지만, 별일 없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특허의 가치가 과연 수 십 억원에 달하는지도 불명확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간단한 아이디어라도 독창성 있으면 특허 가능성

‘휴대용 방범 기구’를 발명해 특허까지 받은 대구북부초등학교 4학년 신준협(10)군이 특허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칠판에는 바람개비에 조명을 붙이고, 여러가지 기능을 탑재한 버튼 등 ‘휴대용 방범 기구’를 설명하는 밑그림이 보인다. [사진 프리랜서 공정식]

‘휴대용 방범 기구’를 발명해 특허까지 받은 대구북부초등학교 4학년 신준협(10)군이 특허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칠판에는 바람개비에 조명을 붙이고, 여러가지 기능을 탑재한 버튼 등 ‘휴대용 방범 기구’를 설명하는 밑그림이 보인다. [사진 프리랜서 공정식]

이처럼 특허의 가치는 불확정적이다. 어떤 재화의 가치가 불확정적이라는 것은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쉽지만, 이같은 특허 가치의 모호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특허를 받고 나서 별다른 활용을 하지 않고 있다가 특허 유지료가 부담돼 특허권을 소멸시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위의 사례에서처럼 특허를 활용해 수 십 억원을 벌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자녀가 취득한 특허를 통해 자녀의 진학, 취업, 상속 등에 활용한다. 또 기업은 특허를 이용해 자사 제품에 대한 실질적 진입 장벽 또는 심리적 진입 장벽을 칠 뿐만 아니라, 특허 제품이라는 점을 부각해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하고, 투자를 유치하기도 한다.

이처럼 특허는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예전에 친분 있는 한 교수께서 바야흐로 '1인 1특허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필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시 그 말을 듣고 변리사인 필자로서도 지나친 과장이 아닌가 하고 속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1인 1특허 시대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가정이 특허 1개를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간단한 아이디어라고 해도 종래에 없던 차별점이 있다면 특허를 받을 수 있다. [사진 pixabay]

아무리 간단한 아이디어라고 해도 종래에 없던 차별점이 있다면 특허를 받을 수 있다. [사진 pixabay]

그렇다면 어떻게 특허를 받을 것인가? 일반적으로 발명, 특허와 같은 단어를 들으면 어릴 적 위인전에서나 보았던 토머스 에디슨과 그의 유명한 발명품인 전구가 우선 떠오른다. 또 대단한 연구원쯤 되거나 무언가 복잡한 것을 발명해야 특허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발명의 특허법상 특허 요건에는 기술의 고도성, 진보성이 포함돼 있지만, 진보성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다. 특허청 심사관은 특허 출원된 발명과 선행 기술(비교대상발명)의 비교를 통해 기술의 고도성과 진보성을 판단한다.

선행 기술로부터의 차별점이 있고, 그 차별점으로 인한 효과가 있다면 특허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간단한 아이디어라고 해도 종래에 없던 차별점이 있다면 특허를 받을 수 있다.

종래에 있었던 것을 결합한 것이라고 해도, 그 결합이 단순한 결합(주합 발명)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적 효과를 가져오는 결합(조합 발명)이라면 특허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에 세척수를 공급하기 위해 세면대의 배수용 배관을 소변기에 연결해 설치한 경우라면 특허에 도전할 만하다.

물론 특허를 받기 위해서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초적이거나 개념적인 것이어도 된다. 기술 상담을 통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명의 씨앗은 생활 속 불편함 

생활 속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그 아이디어를 구현해가는 과정이 발명의 탄생이다. [사진 pixabay]

생활 속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그 아이디어를 구현해가는 과정이 발명의 탄생이다. [사진 pixabay]

최근의 사례를 보자. 한 고등학교 학생이 졸음을 방지하는 필기도구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다며 특허 상담을 요청해왔다. 구체적인 제품 설계는 아직 되어 있지 않았으나 학생 입장에서는 그런 제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후 학생과의 기술 미팅을 추가로 진행해 특허 출원을 했고 그 학생은 특허청으로부터 특허 결정서를 송달받았다.

대단한 아이디어가 있어야만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명자로서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주변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더 중요하다. 생활 속의 불편함(또는 현재 기술의 문제점)을 느끼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그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구성하며, 더 나아가서는 그 아이디어가 가진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발명의 탄생 과정이다.

수레바퀴에서부터 스마트폰까지 세상의 모든 기술(발명)들은 이와 같은 사고의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대기업의 제품에 적용되는 특허 기술이라고 해서 모두 대단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기술도 있지만, 일반인도 약간의 관심을 가지면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기술도 상당수다.

일례로 애플의 ‘밀어서 잠금 해제(SLIDE TO UNLOCK)’ 특허는 터치식 스마트폰이 의도치 않게 터치되어 작동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이처럼 특허란 어려운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다. 주변에 대한 약간의 관심과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누구나 특허권자가 될 수 있고 특허권자가 되면 위에서 언급한 특허권자로서의 다양한 이익을 누릴 수 있다.

김현호 국제특허 맥 대표 변리사 itmsnmd@hanmail.net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누가 사토시 나카모토를 죽였나' (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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