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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남북, 북·미 정상회담 성공은 신뢰에 달려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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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성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전 문화관광부 장관·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김성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전 문화관광부 장관·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전례 없이 4월과 5월에 연이어 개최되는 것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많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 핵 문제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1993년 이후 ‘북한은 선 체제보장 후 폐기, 미국은 선 폐기 후 보상’을 주장하며 맞서 왔다. 2005년에는 북·미 간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남과 북 그리고 미·중·일·러가 참가한 6자회담을 통해 공동 신뢰를 기반으로 행동 대 행동으로 해결하자는 9·19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합의 역시 북미가 서로 먼저 합의를 깼다고 비난하며 무산되었다.

협상 성공하려면 상대방 인정하고 #제안 신뢰하며 상호이익 교환해야 #북, 비핵화와 주한미군 인정하고 #미, 관계 정상화와 경제 지원해야

그 이후 미국과 남한은 유엔과 이해관계국을 통해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해 강력한 경제 제재 조치로 북한을 압박했다. 그러나 북한은 제재와 압박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완성하는 단계까지 왔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의 비핵화를 해결하는 남북, 북·미 간 협상은 과거 개발 단계의 협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또다시 불신과 북한 붕괴를 전제한 협상을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협상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협상 당사자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김정은 위원장을 정상으로 인정하고 그의 비핵화 용의도 받아들여 성사되었다. 이것은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에서 과거와 전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협상 성공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제안을 신뢰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조건의 진의를 잘 파악해서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계속해서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하겠다는 의지일 수 있다.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한다는 제안을 할 수 있다. 이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한미군은 통일 이후에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 비핵화는 북한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내 문제, 아시아 대외 정책, 중국과 러시아와의 이해관계, 이스라엘과 중동·이란과의 문제, 그리고 국내 군수산업의 이해관계 등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과 러시아와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면서도 이런 제안을 한다면 이것은 이번 북·미 회담에서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론 4/9

시론 4/9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체제가 아닌 스위스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경험 때문에 이성적이고 실용주의적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사회주의 체제 고수만으로는 경제 성장도 할 수 없고, 북한을 정상국가로 발전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구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에도 유럽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소속의 미군이 존재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 조건으로 제안할 수 있는 것은 북한과 관계 정상화, 더 나아가 평화협정 체결이다. 그리고 북한이 절대 필요로 하는 사회간접자본(SOC) 및 경제 개발 투자를 제안하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22개 경제특구를 조성하고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장마당과 경제특구를 확대하는 것은 북한을 개혁·개방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제 개발 투자가 성공적으로 진척되면 북한을 세계무역기구(WTO)·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가입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자 외교’의 노력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자 외교’는 외교술이 아니라 신뢰와 진정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한의 정상이 된 것은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한 천우신조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두 지도자의 신뢰와 진정성 있는 만남이 기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입장과는 달리 북한과 협상하지 않을까 우려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정상회담 이후로 미룬 것 같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을 신뢰해야 한다.

이번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한반도만이 아니라 세계 평화에 위대한 기여를 할 것이다. 반면에 실패하면 세 지도자만이 아니라 세계에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다. 세 지도자 모두 지난 25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신뢰와 성공의 길을 갈 것을 간절히 기대한다.

김성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전 문화관광부 장관·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