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적당히 둘러댄 사과 … 안 하느니만 못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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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웅열 회장이 2014년 2월 18일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의 사망자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웅열 회장이 2014년 2월 18일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의 사망자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중앙포토]

어느 기업이나 위기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위기가 오더라도 ‘나쁜 기업’, ‘부도덕한 기업’이 아니라 운이 나빠서, 실수로 인해 겪게 된 일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느냐는 점이다. 물론 쉽지 않다.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이 중요한 까닭이다.

코오롱 vs 대한항공 대응법 차이 #소비자는 진정성·성의를 중시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 자주 비교되는 사례가 있다. 2014년 발생한 코오롱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와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이다.

2014년 2월 17일 코오롱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이 붕괴했다. 10명이 사망하고 110여 명이 부상을 당한 대형 사고였다. 코오롱 이웅열 회장은 곧바로 과천 본사에서 회의를 소집하고 현장 행을 결정했다. 그는 사고 발생 9시간 뒤엔 다음날 오전 6시 현장 지휘소에서 “유가족께 엎드려 사죄드린다”는 사과문을 직접 발표했다. 이어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사고 수습을 현장에서 지휘하며 유족과 보상에 합의했다. 사고가 ‘예고된 인재’였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코오롱은 이 회장의 성의 있는 대응으로 여론의 큰 비판은 피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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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2월 5일 미국 뉴욕JFK공항에서 이륙하려던 대한항공 KE086편이 탑승 게이트로 되돌아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견과류 서비스 절차를 문제 삼아 사무장을 내리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사흘 뒤 사건이 보도되자 대한항공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조 부사장의 문제 제기는 책임자로서 당연한 일”이고 “사무장을 내리도록 한 최종판단은 기장이 한 것”이란 내용이었다. 진정성 없이 책임을 회피하는 사과문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시민단체가 사건을 고발했고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결국 12월 12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으로 사과했다. 조 전 부사장은 결국 1심 징역 1년, 2심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대한항공 사례에서 보듯 때늦은 사과, 반성 없는 사과는 위기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여론에 끌려가지 않는 과감한 선제적 대응만이 최선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는 특히 기업의 진정성 담긴 사과, 성의 있는 태도를 중시한다. 박종민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기업이 제품안전 관련 사고에 대해 사과할 때, 추상적 메시지보다는 구체적 메시지를 담아야 기업에 대한 호감도, 용서 의도, 향후 구매의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 정윤혁 울산과학기술원 교수팀은 논문을 통해 “기업이 위기 시 사과·행동시정·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선 경우, 방어적인 부인·책임회피로 대응했을 때보다 부정적인 여론을 빠르게 잠재울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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