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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 “블랙리스트 차별·배제 실행기관 노릇 반성” 대국민 사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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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영화진흥위원회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기관 노릇을 한 데 대해 국민과 영화인들에게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4일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대국민·영화계 사과문을 통해 “영진위는 지난 두 정부에서 관계 당국의 지시를 받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차별과 배제를 직접 실행한 큰 잘못을 저질렀다”며 “통렬하게 반성하고 준엄하게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월 취임한 오 위원장은 그동안 내부 진상 조사 등을 통해 블랙리스트 실행 사례 등을 파악해왔다.

오 위원장은 “영진위는 2009년 당시 각종 지원사업 심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사실상 청와대와 국정원 등 정부 당국의 지침에 따라 지원작 혹은 지원자를 결정하는 편법 심사를 자행했다”며 “이는 2008년 8월 당시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주도한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에 따라 실행된 조치라는 분석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오 위원장은 영진위가 실행한 블랙리스트 지원 배제 사례도 밝혔다. 영진위는 2009년 단체지원사업에서 촛불시위 참여단체를 배제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위탁사업의 공모제 전환과 사업자 선정에도 부당 개입했다.

아울러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 등 다양한 사업의 심사 과정에도 부당하게 개입해 ‘천안함 프로젝트’(2013, 백승우 감독)를 상영한 동성아트홀, ‘다이빙벨’(2014, 이상호·안해룡 감독)을 상영한 여러 예술전용관과 독립영화전용관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은 절반으로 삭감했다.

또한 2015년 예술영화 지원사업에서 박찬경 감독은 ‘야권 지지자’ 박찬욱 감독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이송희일 감독과 오멸 감독은 진보성향이라는 이유 등으로 각각 청와대로부터 지원 배제 지시를 받기도 했다.

재일조선인·성미산마을·성소수자·한진중공업·간첩·KT노동자·강정해군기지·일제고사 거부 등의 ‘키워드’와 관련된 작품은 ‘문제영화’로 거론되며 지원을 배제당했다.

오 위원장은 “당시 청와대와 관계 당국은 특정 영화인 배제 지침을 영진위에 하달하고, 영진위는 각종 지원 신청작(자)에서 이 지침과 가이드라인에 해당하는 작품과 영화인을 선별해 보고했다”며 “관계 당국은 특정 작품의 지원 배제 여부를 영진위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영진위는 이를 바탕으로 편법 심사에 협조할 수 있는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것은 물론, 심사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통보받은 작품과 영화인을 배제해 영화발전기금 지원을 막았다.

오 위원장은 “심지어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영진위 내부 직원을 별도 관리해 불이익을 준 사례도 존재한다”며 “이런 과정을 거쳐 지원 배제된 영화와 영화사, 영화인은 밝혀진 것만 56건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 위원장은 공식 사과와 함께 ‘영진위 과거사 진상 규명 및 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통해 후속 조사를 진행하고, 피해를 본 영화인에게 사과와 피해 복원 등 후속 조처를 하는 한편, 제도적인 재발 방지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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