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소곤소곤연예가] 이홍렬의 유일한 낙…"애들은 롱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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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왜 사냐 건 웃지요.'

우리네 인생에 이보다 더 멋진 대답이 있을까. 시인 김상용의 시구절만큼이나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진정한 '웃음'의 힘을 알게 한다. 불현듯, 웃어야만 사는 개그맨에게 왜 사느냐는 우문(愚問)을 던진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언제 어디서 만나도 반가운 눈웃음으로 먼저 인사해 주는 국민 개그맨 이홍렬에게 현답(賢答)을 물었다.

"글쎄요. 왜 사는지는 잘 몰라도 저는 요즘 참 사는 게 재미없다는 것은 알죠."

아니, 남들을 늘 재미있게 해주는 개그맨이 정작 자기의 인생은 재미없다니 이 어불성설(語不成說),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정체는?

"그게 말이죠. 일은 너무 즐거운데 집에만 가면 그렇게 무덤덤하고 밋밋한게 너무너무 재미가 없는 것 있죠. 다 애들 때문에 그렇죠 뭐."

유월장마에 돌도 크듯이 어느새 훌쩍 커버린 그의 두 아들은 벌써 열일곱, 열아홉 살의 고등학생. 얼마 전까지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아빠 손이 절실했던 아이들이 이젠 하루 두서너 마디도 사치일 만큼 무뚝뚝하고 말수 적은, 수염 까칠까칠한 청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오죽하면 새해 덕담으로 아내와 제가 '너희 빨리 사춘기 끝내고 예전처럼 재밌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겠어요. 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는 것이 하나 있죠."

그에게는 한 달에 한번 , 방송 출연료 받는 것보다 더 손꼽아 기다려지는 것이 있는데 바로 두 아들의 키를 재보는 것. 늘 작은 키가 아쉬웠던 그는 아이들에게 절대로 키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고.

"두 아들 모두 어릴 적 편식도 심하고 우유도 안 먹어서 속이 많이 상했죠. 그래서 묘안을 짜낸 것이 냉장고에 우유 1리터씩 넣어 각각 아이들 이름을 써 놨어요. 그리고 먼저 먹으면 1000원씩 용돈을 줬죠."

경쟁심은 아이들의 편식을 고치는 것은 물론 키도 쑥쑥 자라게 했다. 이 참에 운동까지 욕심낸 그는 예전 바닥만 보고 공만 차던 자신과 달리 하늘을 보며 하는 점프가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정보를 입수, 두 아들을 무조건 농구반에 넣었다. 덕분에 현재 두 아이의 키 모두 180㎝ 고지가 눈앞에 보인다고.

"취미 삼아 시켰는데 둘째는 농구선수가 꿈이래요. 아직 선수하기엔 작은 키라 고민이 돼서 평소 친분 있던 서장훈 선수에게 테스트를 받았어요. 그랬더니 앞으로 혹 하나 붙었으니 각오 단단히 하라고. 의외로 소질도 있고, 의욕도 있으니 열심히 선수 뒷바라지해 주라더군요. 숏다리 이홍렬의 아들이 농구 선수 한다면 믿어지나요? 신기하죠."

불과 몇 분 전, 사는 것이 재미없다던 그가 재밌어라 하며 하는 이야기가 끊일 줄 모른다. 그에게 다시 한 번 인생을 물었더니 여전히 지그시 웃는 이홍렬. 그 웃음에 나도 함께 웃었다. 다같이 스마일~.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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