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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학원 셔틀버스 운전기사 폐렴…法 "업무상 재해"

중앙일보

입력

수강생들을 실어나르는 학원 셔틀버스 모습.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없음. [중앙포토]

수강생들을 실어나르는 학원 셔틀버스 모습.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없음. [중앙포토]

학원 셔틀버스 운전기사 일을 하다 폐렴과 급성호흡부전 진단을 받은 70대에게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2015년 7월, 박모(당시 77세)씨는 서울의 한 학원과 계약을 맺고 수강생들의 통원 차량 운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열 달 쯤 된 이듬해 5월 어느 토요일, 박씨는 갑자기 쓰러진 채 발견됐다. 119 구급차를 타고 급히 실려 간 병원에서 진단받은 병명은 '상세 불명의 폐렴·저산소성 급성호흡부전·기타 상세 불명의 고혈압'이었다.

박씨는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이런 병을 얻게 됐다고 생각해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두 가지 이유를 들며 안 된다고 했다. 일단 박씨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박씨가 학원과 맺은 계약은 고용계약이 아니라 '차량수송위탁계약'으로 도급계약이었다. 여기에 "운전 때문에 폐렴에 걸렸다고 볼 수 없다"는 점도 요양불승인처분의 이유로 더해졌다.

폐렴에 걸린 환자 이미지. [중앙포토]

폐렴에 걸린 환자 이미지. [중앙포토]

박씨의 사건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 이승원 판사는 근로복지공단이 주장하는 이 두 가지 이유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달 23일 이 판사는 박씨의 손을 들어주며 "근로복지공단은 박씨에게 요양급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계약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실질적으로 근로자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를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이 사건을 해석했다.

이 판사는 박씨를 근로자로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박씨는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다른 영업행위를 하거나 임의로 차량운행을 쉴 수도 없었다. 다른 사람을 고용해 박씨의 업무를 대체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박씨와 학원 사이 맺은 계약은 박씨가 무단으로 운전을 안 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폐렴구균. 폐렴은 폐에 세균이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으로 발열과 기침 호흡곤란의 증상이 나타난다. [사진 질병관리본부]

폐렴구균. 폐렴은 폐에 세균이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으로 발열과 기침 호흡곤란의 증상이 나타난다. [사진 질병관리본부]

법원은 셔틀버스 운전 일 때문에 박씨가 폐렴에 걸린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한 대학병원에 진료기록감정을 의뢰했다. 그 내용을 본 이 판사는 "박씨가 셔틀버스 운행하면서 폐렴 원인균에 노출됐을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자동차 매연 등 외부 환경에 장기간 노출됐을 뿐 아니라, 셔틀버스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여러 수강생을 접촉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과 "박씨는 일주일에 6일을 근무했고 하루 6시간 30분~8시간을 일하며 식사·휴식을 위한 시간·장소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됐다. "쓰러질 당시 78세였던 박씨가 업무로 인해 상당한 체력적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박씨가 평소 약을 먹고 있던 고혈압에 대해서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았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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