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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이시형<고려병원·신경정신과장>|신경성환자와 참을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참을성이 없다는건 노이로제의 간판이다. 그러나 그건 불안이나 작은통증에 관한 이야기지, 다른면에선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머리 좀 아프다고 그먼길 눈속을 헤집고 병원에 온다. 오면 진찰인들 쉽나? 몇시간을 기다려야한다. 때론 점심도 굶고 비좁은 대기실에 앉을 자리도 없이 기다려야한다. 이런 일들은 보통 인내심으로서는 당해내지 못한다.
민망스럽기도하고 딱하기도하다. 저러고 여기까지 와 기다리느니 차라리 집에서 쉬는게 낫지 않을까?
웬만하면 귀찮아서도 안올텐데 신경성 환자는 그렇지 않다. 귀찮은것쯤 개의치 않는다. 그뿐인가. 힘들고 아픈 갖가지 검사에도 선선히 응한다.
까다로운 진단검사절차에 대단히 협조적이다. 병원측으로선 고마운 환자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다. 이렇게 잘 참는 환자가 왜 처음부터 머리좀 아픈건 참지 못할까? 물론 처음 얼마는 참고 버텨보기도 했을 것이다. 진통제도 먹었겠지. 한데도 자주 재발하니 슬슬 걱정이 되었을게다. 혹이 생긴건가, 혈압인가, 아니면 속에 이상이라도 생긴건가.
이 정도는 누구나 할수 있는 걱정이다. 그럴땐 당연히 병원에 와야한다. 귀찮은 검사도 받아야한다. 그리고 난후 검사결과가 정상이라면 일단 믿고 견뎌야 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다. 한데 신경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별것 아닌줄 알면서도 계속 찾아온다. 바로 이 점이 병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신경성」이란 기능적인 문제다. 마음 씀씀이에 따라 달라진다는뜻이다. 좀 아픈건 참아야 한다. 미련을 떤다고 큰 탈이 날것도 아니다. 그러노라면 좀 나아지는게 신경성의 경과다. 한데도 이럴 여유가 없다. 자기는 인내심이 없어 그게 안된다는 것이다.
이게 그의 솔직한 자화상이다. 그러나 이건 그의 전체 인간상이 아니다. 그에겐 강한 인내심이 있다. 의지도 강하다. 귀찮은 검사를 참아내는것도 그렇고, 추우나 더우나 병원 약속만은 지키는것도 보통사람으로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이걸 확인해야한다. 자신의 전체를 다 볼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 당신이 생각하는만큼 의지가 약한것도, 인내심이 없는것도 아니다.
병원에 오는 정성으로 운동이라도 해보라. 맑은공기를 마시며 산에 오르는 것도 좋은 치료다. 그 편이 돈 써가며 컴컴한 병원복도에 죽치고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다. 병원행 발길을 산으로 돌려라. 마음만 먹으면 할수 있는 일이다. 이건 인내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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