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엄건식<서강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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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때마침 내리고 있는 안개비 때문에 페허의 도시 폼페이는 머나먼 여로에 지쳐있는 나그네의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하는 것 같았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베스비우스 화산은 불안한 침묵을 계속 지키고 있고 여기 저기에 흩어진 돌무덤 사이로 이름모를 꽃들이 피어 있어 찬란한 문명의 잔재가 기이한 한폭의 풍경화를 이루고 있었다.
기원전 6세기께 상업중심의 항구도시로 출발하여 제왕이나 귀족들의 휴양지로도 각광을 받는등 번영을 누리던 이 도시가 지척에 있는 베스비우스의 대폭발로 삽시간에 매몰되어버린 것은 서기 76년 여름의 일이었다.
그 분화는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인구 2만명의 이도시가 12내지 15피트 정도의 두께로 완전히 매몰되고 만것이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고도 폼페이는 그동안 잿더미와 망각속에 묻혀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옛날 그때의 모습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될수 있었다.
마지막 몸부림이 순간적으로 정지하여 화석이 되어버린, 그 어느 위대한 조각가의 작품보다도 훨씬 더 설득력이 있는 여러 석상들의 처절한 모습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킨 그 화산의 폭발이 결코 우연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나폴리의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이나 이곳에 아직도 잘 보존되어있는 외설스런 벽화들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베스비우스의 폭발은 인과응보임에 틀림없다는 심증을 어쩔수 없이 더욱 굳히게 된다. 이곳의 로마인들은 단순히 관능적 쾌락을 즐겼을 뿐만아니라 그것을 숭상하는 쾌락주의에 빠져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역시 화산의 폭발과 쾌락주의 사이에 필연적인 연관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임에 틀림없다. 자연의 섭리와 인위적행위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들은 안심하고 여전히 도처에서 쾌락의 추구에 여념이 없는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소위「쾌락주의의 역설」이라는 것을 한번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의식적으로 쾌락만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고통속에서 끝을 맺고만다는 가르침이다. 인간에게 욕심은 한이 없고 쾌락을 누릴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제한된 쾌락을 추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다툴 수밖에 없기때문에 비참한 종말을 자초하고야 만다는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쾌락주의의 창시자인 에피큐러스(Epicurus)조차도 고통을 수반하는 관능적 쾌락보다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주는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도록 권고했으며 자기 스스로「숨어서 살아라」는 말을 신조로 삼고 독신과 은둔으로 생애를 마쳤던 것이 아닌가.
확실히 어떤 화산의 폭발이 그 근처에 사는 주민들의 생활태도나 사고방식 때문에 일어난다고 볼수는 없다. 그러나 화산은 우리의 밖이나 땅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안, 즉 마음속에도 있으며 그것은 언제라도 쾌릭주의의 역리라는 활화산이 되어 욕망의 불줄기를 뿜고 인간의 삶 전체를 폐허의 잿더미 속에 파묻어 버릴수 있다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환락의 도시 폼페이는 분명히 베스비우스의 폭발때문에 매몰되었지만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문명권자체는 로마인들 각자의 내부에서 끓어오른 욕망의 화산이 분화했기 때문에 멸망했다고 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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