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유지에 급급 … 미래 안 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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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선 CPE 반대 투쟁을 노동시장에 이미 진입한 기성세대와 향후 진입을 앞두고 있는 젊은 세대 간의 갈등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소재 보코니 대학의 티토 보에리 교수와 토리노 대학의 피에로트 가리발디 교수는 "CPE가 노동시장 내부자와 외부자 간 세대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러한 갈등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노동시장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토리노의 일간지 '라 스탐파'의 평론가 도메니코 시니스칼코도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구역!'을 구호로 기성권력에 반기를 들었던 68혁명 당시 학생들과 달리 현상유지에 급급한 지금의 프랑스 젊은이들을 유럽인들이 동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의 일간 더 타임스의 평론가 시어도어 달림플은 "무엇보다 절망적인 것은 시위대들이 너무도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이며, 현재의 특권과 직업을 기어코 부여잡으려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27세 이상은 보호받는데 우리는 왜 위태로워져야 하느냐'고 절규하는 프랑스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며 "50%에 달하는 실업률에 고통받는 무슬림 청소년들이 지난해 대규모 폭동을 일으킨 것과도 성격이 사뭇 다르다"고 지적했다.

빌팽 총리를 정점으로 한 프랑스 정부의 미숙한 대응과 CPE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쓴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특히 CPE로 실질적인 혜택을 보게 될 프랑스 기업들조차 빌팽 총리가 지나치게 갈등을 야기해 사회적 비용을 극대화한 데 불만을 품게 됐다는 게 유럽 언론과 정치인들의 시각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볼프강 문초는 지난달 27일 "프랑스는 CPE를 내놓는 대신 기존의 노동계약을 개혁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랑스 노동시장을 제대로 개혁하려면 적어도 구조적인 고실업 문제를 야기하는 다른 요소들에 손을 대는 게 옳았다"며 세계최저 수준인 주 35시간 근로제와 시간당 8.03유로(약 9500원)로 잡혀 있는 최저임금제(SMIC)를 개혁 대상으로 꼽았다. 문초는 또 "이러한 잘못된 접근 때문에 프랑스가 치르는 경제적 손실과 정치적 혼란은 엄청나다"고 덧붙였다.

시니스칼코는 빌팽이 CPE 통과 전에 더 많은 논의와 설득을 했더라면 더욱 많은 지지세력을 확보해 시위대에 맞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양비론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유럽의 분위기와는 달리 대서양 건너의 미국에서는 빌팽 총리 측에 비교적 동정론을 보내고 있다고 프랑스 언론들이 지적하고 있다. "유럽이 안고 있는 고질병과 투쟁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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