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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뉴욕의 '서민 오케스트라' 지휘하는 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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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원 월드 심포니'(oneworldsymphony.org)의 공연 모습은 다른 오케스트라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선 공연 장소가 고급 음악홀이 아니라 맨해튼이나 브루클린 지역의 교회.성당 또는 주민회관이다.

당연히 방음시설이나 푹신한 의자는 기대할 수 없다. 관객들은 대부분 서민층이다. 청바지 등 평상복 차림으로 어깨를 맞대고 끼여앉아 음악을 듣는다. 입장권 가격도 10~35달러로 저렴하다. 지휘자는 연주회 중간중간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며, 공연이 끝난 뒤에는 출연자들과 관객이 다과 테이블을 둘러싸고 감상도 주고받는다.

뉴욕 일대의 무명 연주자들에 길거리 악사들까지 망라된 이 '서민 오케스트라'는 뉴욕 필하모닉이 부럽지 않은 열정과 활기를 자랑한다. 한 달에 한번 꼴로 연주회를 갖는 이 오케스트라가 지난 19일 맨해튼의 한 교회에서 연 '카르멘' 공연도 유쾌한 축제 한마당으로 펼쳐졌다.

2001년 이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지금까지 이를 이끄는 사람은 재미 한인 홍성진(29)씨다. 그는 이 오케스트라의 대표이며, 지휘자이자 음악감독이다. AP통신은 홍씨에 대해 "한국에서 태어나고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한 몽상가가 뉴욕 공연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평했다.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홍씨는 일리노이주 웨슬리안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으며, 뉴욕주의 바드칼리지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실버 어워드를 수상하며 유망한 청년 지휘자로 평가받던 그는 "클래식을 대중의 품에 안겨주겠다"는 꿈을 안고 1999년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는 뉴욕 도처의 젊고 유망한 연주자들에게 "일류 무대만 바라보며 청춘을 보내지 말고 우리 스스로 기회를 만들자"고 설득했다. 길거리나 지하철의 악사도 재능이 있으면 동참하도록 권유했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마침내 '원 월드 심포니'가 탄생했다. 9.11 테러 직후였기에 모차르트의 '레퀴엠'(진혼곡)을 데뷔작으로 삼았다.

"대중에게 호소해 그들의 공감을 광범위하게 끌어낼 수 있어야 진정한 음악"이라고 말하는 홍씨는 앞으로 양키스스타디움에서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지휘해보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여자 친구(에이드리엔 메친거)가 매니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그리고 소프라노로서 그를 곁에서 돕고 있다.

왕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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