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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의 시시각각

그들은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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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영국 런던에는 두 가지 날씨가 있다. 비 오는 날과 비 많이 오는 날이다. 세상사에도 이 우스개가 적용될 수 있겠다.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이기적인 사람과 덜 이기적인 사람이다. 여기선 더 이상 우스개가 아니다. 정말 그렇다. 세상엔 이기적인 사람과 덜 이기적인 사람 두 부류만 존재할 뿐이다. 자신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환상과 만난 권력은 절대 남용된다 #이기심 덜어낸 만큼만 권력 가져야

‘덜’의 기준은 자기애(自己愛)가 어디까지 이르냐에 달렸다. ‘나를 위해 남을 해칠 수 있나’가 그것이다. 자기 이익을 지키려는데 남에게 피해가 갈까 봐 망설여진다면 덜 이기적인 사람이다. 망설이다 이익을 위해 남의 피해를 무릅쓴다면? 콩그레추레이션! 이기적인 사람 반열 등극이다. 덜 이기적인 사람은 결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기억하시는지?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전 재산인 70만원과 “미안하다. 월세와 공과금에 보태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덜 이기적인 사람은 이렇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도 남에게 피해를 준 게 미안한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미안해하지 않는다. 미안한 줄도 모른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요즘 수시로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성관계는 가졌지만 강압은 아니었다.” “피해자에게 사과하지만 피해자가 누군지 모르겠다.” ‘미투’ 가해자들뿐만이 아니다. “측근들의 증언이 있지만 허위일 것이며, 관련 청와대 문건이 있지만 조작된 것일 테고, 그것이 불법 반출됐지만 실수였을 것”이라는 전직 대통령도 있다. 행위와 결과는 다를지라도 본질은 하나에서 출발한다. 이기심이다.

이들은 이기적인 사람이 권력을 쥐었던 전형적인 경우다. 그들의 전형적 특징이 있다. 권력 때문이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으로 자신들이 사랑받고 존경받는다고 믿는 것이다. 덜 이기적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착각이지만 이기적인 경우는 중증(重症) 환상이 된다. 사이코패스가 천재로 승화되고 악질적 행태가 리더십으로 변모한다. 남들이 아니라 혼자서만 그렇게 여기니 탈이 난다. 그러니 아무리 싫다고 해도 내숭이 되는 거고, 남이 하는 건 눈 뜨고 못 보면서 나는 서슴없는 것이다.

덜 이기적인 사람은 금방 착각에서 빠져나온다. 미국의 군인이자 정치인 조지 마셜처럼 말이다. 그가 회고록에서 말했다. “육군 대장으로 진급하자 내가 갑자기 인기 코미디언 수준의 유머 감각을 갖게 됐다. 시답잖은 말에도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조크에 반응하는 웃음의 크기가 계급에 비례한다는 걸 그는 안 것이다. 그러니 착각하지도 않았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이기적인 사람은 그걸 모른다. 자기가 좋아서, 자기를 존경해서 웃는 줄 안다. 그래서 성폭행·성추행이 ‘성은(聖恩)’이 되고, 자신의 소송비용을 딴사람이 대신 내도 당연한 게 되는 것이다.

환상과 만난 권력은 절대적으로 남용되고 흔히 범죄가 된다.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가 붙었던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신탁(神託)보다 중요한 게 환상을 버리는 것이란 말이다. 프랑스 시인 클로드 루아는 수필집 『세월의 기슭』에서 말했다. “모든 환상을 버려도 한 가지 남는 가장 큰 환상이 있는데 환상에 빠지지 않았다고 믿는 환상이다.” 그만큼 버리기 어려운 게 이기심 탓이다. 이기심을 덜어 내야 한다. 특히 권력은 이기심을 덜어 내고 남은 자리만큼만 소유하고 행사해야 한다. 그래야 남도 안 다치고 저도 지킨다. 쉽지 않은데 어때야 하나.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그들은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