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은 이해가나 표현방법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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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법관들의 성명서가 나온직후 김용철 대법원장은 이정우 법원행정처장 등 법원행정처 간부들과 대책을 숙의.
김대법원장은 이 자리에서 『명예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법관으로서 이같은 불명예스런 일을 당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했으나 주변간부들은 『이번 성명이 모든 법관들의 뜻으론 볼 수 없는데다 대법원장이라는 공인으로서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의 반응을 보이는 것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만류했다는 후문.
○…서명판사중 형사법원판사가 한명도 없었던 것은 시국·재판을 진행하는 판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겠다는 배려라고 설명하지만 형사법원판사들이 보안유지를 여타 법원판사보다 하기 힘들다는 자체 판단도 작용했다는 것.
또 집단행동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극약처방이라는 일부 법관들의 반대의견으로 한때 서명판사 사이에 분위기가 험악해지기까지 했으나 「자구책」「신뢰 회복」「반성 및 체질개선의 계기」등의 명분에 결국 뜻이 합치되었다는 것.
○…성명발표전인 15일 오전 서울민사지법 박만호 수석부장판사는 서명법관의 리더격인 사시 l8회 2명을 사무실로 불러 「자제」를 요청했으나 설득에 실패.
박부장은 『최고 지성의 집단행동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말로 발표철회를 요구했으나 서명법관들은 대법관 자리가 정당간 타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명분으로 맞섰다는 것.
○…성명서가 발표된 후 몇몇 부장판사들은 『대법원장이 이런 일이 터지기 전에 「대법원장자리는 정당간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뒤 연임의사가 없음을 표시했으면 본인은 물론 사법부도 함께 살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이들 판사들은 『만일 대법원장이 이같은 입장을 표명했더라면 이들 서명판사들이 김대법원장의 재옹립 성명을 발표했을 것』이라고 애석한 표정.
○…법관들의 성명서 발표후에 소식을 전해들은 검찰은 뒤늦게 성명서를 입수, 내용을 분석하느라 분주.
그러나 71년 사법파동과는 달리 검찰이 직접 관련되지 않아 사뭇 홀가분한 표정들이었고 한울타리안의 법원에서 큰 회오리바람이 예상되기 때문인지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법원의 장래를 점쳐보는 모습들.
○…김은호 전대한변협회장은 법관성명에 대해 『사법부의 신뢰회복은 법관들이 법관양심에 따라 재판할 때 가능한 것이지 집단행동으로 이룩되는게 아니다』라며 매우 부정적인 반응.
김변호사는 『대법원 개편이 정치적 흥정대상일수 없다는 충정의 의사표시로 이해한다』면서도 『정부 교체때마다 사법부가 전면 개편되는 것은 법관의 신분보장이란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현채 변호사는 『이번 성명은 사법부의 독립과 의연함을 보여주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며 『이번 성명사건이 하극상으로 잘못 비쳐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평가.
○…인권변호사단체인「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16일『재야의 신망있는 변호사 중에서 대법원장이 나와야한다』고 주장.
이들 변호사들은 또 『대한변협이 내세운 신임대법원장의 자격기준과는 달리 연령·경력 등과는 관계없이 양심을 지키고 신망이 있는 재야인사중에서 대법원장이 나와야 한다』강조.
○…서울대법대 백충현 교수(공법학)는 『한마디로 사법부의 독립을 위한 강력한 의사표시』라고 말하고 『표현방법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 당국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 운동으로 보지말고 건전한 의사표시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고 강조.
○…16일 오전 대법원장이 출근치 않고있는 가운데 서울민사·형사지방법원장 등 재경 지원장들은 이정우 법원행정처장실에 모여 대책을 논의.
또 이날 오전 급거 상경한 부산·광주고등법원장, 사법연수원장 등은 재경법원장회의에 참석한 뒤 윤승영 서울고법원장실에 따로 모여 무거운 표정으로 회의를 계속.
한편 대법원 청원경찰 방호원들은 대법원장의 출근모습을 찍기위해 포진한 사진기자들에게 폭언과 사진기를 뺏는 등의 행동으로 취재활동을 방해하기도.
○…민정당은 소장법관들의 사법부 쇄신요구 집단성명에 대해 한결같이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
특히 이들의 성명이 김용철 대법원장 재임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김대법원장 본인역시「사퇴」의사를 밝히고 있어 대법원장 교체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 후임자 물색 등 사후대책 마련에 고심중.
현재 정부·여당에서 거론되고 있는 인사로는 재야에서 이일규 김덕주 전대법원판사·김윤행 김두현 전대한변협회장·이성렬 전의원, 재조에서 이정우 법원행정처장·윤일영 중앙선관위원장·김형기 대법원판사 등이나 재야쪽 인사들은 연령이 정년에 가깝거나 검사출신·정계에 몸담았던 점등이 결격사유로 작용하고 있고 재조쪽은 연령이 적다는 점에서 「신망」「경륜」에 다소 미흡하다고 보고있어 『적임자가 없다』는게 고민.
한편 16일 오전 열린 당5역·고문 연석회의와 확대당직자회의에선 당초 국회대책을 중점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사법부문제」를 주로 다뤄 공식논평을 통해 「유감」의 뜻을 표명.
김중위 대변인은 『유감으로 생각하며 조속한 수습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논평.
그러나 회의에선 『이는 비단사법부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전체가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으로 근본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자성과 우려가 쏟아졌다는 후문.
한 당직자는 『사법부독립과 기본권 신장은 판사 개개인이 스스로 판결을 통해 수호하고 바로 잡아가는게 바람직하지 집단행동은 오히려 양식에도 어긋나고 사법부독립을 저해하는 처사』라고 비난.
○…평민당은 16일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당론으로 법관들의 사법부쇄신요구에 대한 전폭지지를 결의하고 소장법관들의 「용기있는 행동」「새로운 희망을 심어준 것」이라고 평가.
이상수 대변인은 회의 후『우리당은 정부당국이 하루빨리 사법부를 민주적으로 개편할 것을 촉구했으며 정부당국의 태도를 예의 주시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모든 조치를 다하기로 결의했다』며 전폭지지의 배경을 설명.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는 15일 저녁 일부판사들의 사법부 쇄신요구성명을 보고받고 『심각하고도 중대한 사태』라고 지적, 16일 오전 정무회의를 긴급 소집하라고 지시한 후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특별성명을 발표.
김총재는 정무회의시작에 앞서 강신옥 인권위원장과 김광일·노무현의원 등 변호사출신의원들을 따로 불러 사태의 배경과 파급효과를 밀도있게 분석.
김총재는 그동안 △안기부조정관들의 법원지배 △일부 고위법관들이 몸보신에 급급해 소극적 자세를 취하고 △김재규 사건처럼 소수의견을 냈던 대법관들의 재임명 전원탈락 △검찰의 고압적 자세등 사법권침해 사례를 열거.
강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정무위원들은 『마침내 올것이 왔다』며 『야권 3당이 하루빨리 국민의 지지를 받는 대법원장을 정부가 임명토록 촉구해야할 것』이라고 강조.
○…공화당은 사법부 일부판사들의 서명운동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면서도 3권 분립된 상태에서 사법부에 대한 직접적 논평을 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에서 몇차례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다 대변인 성명을 발표.
16일 아침 당 간부회의에서 이희일 기획실장은 『현정부가 새 헌법에 의해 6공화국으로 출범하는 마당에 대법원장 임명문제 등에 확실한 입장을 밝혔으면 이러한 일은 없었을 것』 이라며 현정부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비판.
○…정부관계자들은 소장판사들의 성명발표를 무겁게 받아들이면서도 『사법부내에선 그들의 동기가 꼭 순수하다고만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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