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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안 국무회의 패싱 위헌 논란···민주당도 "아차 싶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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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무회의 패싱 위헌 논란 … 발의 당일 심의한다는 청와대

헌법에 “국무회의 심의 거쳐야” 규정 #여당 “미처 생각 못해 아차 싶었다” #청와대 “오늘 심의서 반영할 건 할 것” #야당 “몇시간 만에 어떻게 심의하나 #문 대통령이 회의 직접 주재 않고 #UAE서 전자결재하는 건 헌법 무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하루 앞둔 25일 ‘국무회의 패싱’에 따른 위헌 논란이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현행 헌법 89조에 따르면 개헌안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발의(發議)하게 돼 있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개헌안은 발의 당일인 26일 국무회의에 처음 상정돼 심의 절차를 밟는다. 청와대가 이미 개헌안 내용을 다 공개한 상태에서 막판에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올리는 것은 헌법이 정한 ‘국무회의 심의’를 무시한 행태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25일 국회에서 '문재인 관제개헌(안) 관련 긴급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영수 고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 원내대표, 함진규 정책위 의장, 윤재옥 원내수석부대표, 안상수 의원. 변선구 기자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25일 국회에서 '문재인 관제개헌(안) 관련 긴급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영수 고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 원내대표, 함진규 정책위 의장, 윤재옥 원내수석부대표, 안상수 의원. 변선구 기자

함진규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헌법개정안을 국무회의 심의 사항으로 규정한 무게를 헤아린다면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회의가 아니라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했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국 민정수석이 사흘에 거쳐 개헌안을 조문 형태가 아닌 보도자료로 쪼개 발표하고, 또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개헌 발의에) 전자결재로 서명하는 건 헌법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당 정진석 의원은 “숙의 민주주의를 좋아하는 이 정부가 숙의는커녕 국무회의 심의도 거치지 않고 개헌안을 발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른 야당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나왔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개헌안은 국회도 패싱, 국무회의도 패싱, 법제처도 패싱,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청와대뿐”이라며 “위헌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국무회의를 단순한 요식 행위로 생각하는 오만한 발상”이라고 질타했다. 또한 “국무위원인 법무부 장관을 배제하고 대통령 개인 비서에 불과한 민정수석 주도로, 개헌안을 이벤트하듯 하나하나 발표하는 이런 행태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그 자체”라고 했다.

윤영일 민주평화당 최고위원 역시 23일 당 회의에서 “법무부 장관을 제쳐놓고 청와대 민정수석이 발표를 했다.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이 선거 공약용이나 홍보용으로 쓰이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여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율사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국무위원 논의가 생략됐다는 지적은 아픈 대목이다. 우리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차’ 싶었다”고 토로했다. 변호사 출신의 한 의원도 “개인 의견을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국정은 국무회의가 주도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원로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가 2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발 개헌안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중앙포토]

원로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가 2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발 개헌안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중앙포토]

개헌 절차의 위헌 논란은 원로 헌법학자이자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역임한 허영(82) 경희대 석좌교수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3월 22일자 8면)에서 처음 제기했다. 허 교수는 “헌법개정안과 관련해 국무회의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발의 직전에 국무위원들이 심의한다고 해도 그건 거수기 노릇만 하는 것”이라며 “왜 현행 헌법을 헌신짝처럼 무시하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일종의 위헌”이라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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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개헌안 작업은 민정수석이 해야 할 의무이자 책무”라며 “야당이 3일간의 개헌안 설명을 발의로 착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대통령 개헌안은 국무위원들이 심의한 뒤 발의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 역시 “국무위원들도 충분히 개헌 내용을 인지하고 있다. 26일 심의 과정에서 반영할 필요가 있는 건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20일 오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20일 오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현실적으로 청와대가 개헌안 전체 내용을 공개한 상황에서 발의 직전에 내용을 손보자고 나설 장관들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홍지만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개헌안에 담긴 엄청난 내용들을 어떻게 국무회의에서 몇 시간 만에 다 심의를 한단 말이냐”며 “총리와 장관들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대통령 개헌안은 26일 오전 10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 안건으로 상정된다. 국무회의에서 이를 의결하면 문 대통령은 UAE 현지에서 전자결재로 승인할 예정이다.

최민우·허진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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