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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눈물 흘리는 이시형 안으며 "왜 이렇게 약하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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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논현동 자택 앞에서 측근들에게 구속 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3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논현동 자택 앞에서 측근들에게 구속 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지난 22일 구속영장 발부 전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가족과 측근들에게 시종일관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날 오후 8시쯤 친이계 의원들과 청와대 참모진 등 40여 명이 자택에 모였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 장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동관 전 홍보수석, 정동기 전 민정수석, 김효재 전 정무수석, 자유한국당 권성동ㆍ김영우ㆍ장제원 의원과 이재오 상임고문, 조해진 전 의원 등이다.

MB는 오후9시 쯤 2층에서 내려와 이들을 맞았다. 목욕을 마친 직후, 양복 바지에 와이셔츠는 밖으로 꺼내 입은 편안한 차림이었다. MB는 “내가 참 면목이 없다. 여러분이 나라의 기틀을 세우느라 밤새워 일했는데, 내가 누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내 팔자가 이런 것을 어떻게 하겠느냐. 팔자대로 가야한다”고도 했다.

아들 이시형씨(왼쪽)를 비롯한 딸과 가족들이 23일 서울 동부구치소로 향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중앙포토]

아들 이시형씨(왼쪽)를 비롯한 딸과 가족들이 23일 서울 동부구치소로 향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중앙포토]

MB가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됐던 이야기도 나왔다. 이재오 전 의원이 “54년 전에도 감옥에 가시지 않았느냐, 그때는 젊으셨다”고 하자 MB는 “80이 다되서 또 가게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는 내란선동죄로 가게 됐는데 이번엔 무슨 비리라고 하니 죄목이 좀 그렇다”고도 했다.

MB는 1시간 쯤 담소를 나누다 오후 10시 이후 2층으로 올라갔다. 얼마있다가 넥타이에 정장 차림을 하고 1층으로 다시 내려와 전날 새벽 자필로 쓴 입장문을 읽어 내려갔다고 한다. “내가 구속됨으로써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가족의 고통이 좀 덜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대목 등에서 가족들이 오열했고, 측근들도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MB는 김윤옥 여사, 아들 이시형씨 등을 한명씩 안아주면서 김 여사에게는 “울지 마라, 괜찮다” 아들에게는 “왜 이렇게 약하냐, 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2일 밤 구속영장 발부 직후 페이스북에 자필로 쓴 입장문을 올렸다. [중앙포토]

이명박 전 대통령은 22일 밤 구속영장 발부 직후 페이스북에 자필로 쓴 입장문을 올렸다. [중앙포토]

오후 11시쯤 구속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지자 MB는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이제 가야지”라며 코트를 챙겨 입었다. “밖이 춥다”는 주변 만류에도 “검사들 집으로 들이지 마라. 내가 밖으로 나가겠다”며 서둘렀다고 한다. 대문 앞에서 영장을 들고 온 검사와 마주쳤고, MB는 영장을 확인했다는 의미로 서명을 했다.

참석자들이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힘내시라”하니 MB는 “내가 미안하지. 잘 견뎌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우리가 오히려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잘 잇지 못하자, MB가 미소까지 띄워가며 이런 저런 말을 하더라”며 “내가 본 MB의 모습 중 가장 편안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MB는 23일 오전 0시 1분 검찰 관용차량을 타고 서울 동부구치소로 향했다. 전두환ㆍ노태우ㆍ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대한민국 헌정사상 네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됐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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