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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하다 일본 순사에 끌려가”…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생애 다룬 사례집 출간

중앙일보

입력

1945년 10월 태국 우본에서 촬영된 위안부 여성 사진. 오른쪽은 태국에서 노수복 가족이 운영하던 찻집과 가족. [사진 서울시 제공]

1945년 10월 태국 우본에서 촬영된 위안부 여성 사진. 오른쪽은 태국에서 노수복 가족이 운영하던 찻집과 가족. [사진 서울시 제공]

가난 때문에 14살의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게 된 노수복씨. 그는 21살이 되던 해 식모살이 일을 하러 간 부산에서 빨래하던 중 일본 순사에게 끌려갔다. 40여일 항해 끝에 그가 도착한 곳은 싱가포르. 그는 이곳에서 지옥같은 위안부 생활을 겪어야 했다. 아침에는 군인들의 옷을빨거나 청소를 했고, 오후엔 탄약통을 나르면서 하루 60명의 병사를 맞았다. 이렇게 8개월을 지낸 뒤 태국으로 옮겨진 그는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자 영국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말레이시아, 태국 등지를 전전한 끝에 끝에 태국에서 결혼하고 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2011년 태국에서 사망한 그는 생전에 “겨우 목숨만 이어가는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고 증언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6명의 생생한 증언과 미국과 태국, 영국 현지조사를 통해 새롭게 발굴한 자료를 담은 사례집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가 22일 출간한다. 서울시가 서울대인권센터정진성교수연구팀과 함께 발굴한 사례집의 부제는 ‘사진과 자료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이야기’이다.

이 사례집은 위안부 피해 여성의 생애를 다루는 데 집중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발간한 증언집이 피해 상황 설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 사례집에는 식민지 사회에서 어떤 생활을 하다가 끌려가게 됐는지부터 귀환 여정, 귀환 후 생활까지 담았다.

특히 그간 할머니들의 증언만 있었을 뿐 크게 주목받지 못한 태국 위안부 관련 자료가 눈길을 끈다. 사례집에는 태국 깐짜나부리ㆍ아유타야 수용소 외에도 우본에 위안부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담겼다. 우본 수용소를 관리했던 영국군 대령이 조선인 위안부 5명의 사진을 남겨뒀고, 회고록에 그들이 도움을 요청한 사실을 남긴 것이다.

한국정부에 피해 등록을 하지 못한 피해여성의 이야기도 담았다. 피해가 드러났지만 이미 작고한 피해자, 중국에 살면서 국적 회복을 포기했거나 국적 회복 중 작고한 피해자, 뒤늦게 피해를 드러내고 정부 등록 과정을 진행하다가 작고한 피해여성의 이야기다.

사례집은 22일부터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다. 서울시는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시민 대상 강연회도 개최한다. 서울대 인권센터 관계자는 “위안부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동안은 생존해 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이 이를 대체했다면 이제는 사례집처럼 자료와 증언집으로 기록해 사료로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구체적 증거를 통해 위안부 실태를 명확히 증명하겠다”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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