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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에 쏟아지는 미투…1박 2일 ‘2018분’ 이어말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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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을 받지도 못한 나이에 집 앞에서 모르는 남성에게 성추행 당한 적이 있다. 그 일을 일기장에 한 글자씩 썼다. 어머니가 밤에 일기장 보고 제게 말씀하셨다. ‘글을 지우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지만 손으로 그 글자를 지웠지만, 머릿속에서는 그 일을 지울 수 없었다.”(20대 대학생 여성 A씨)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1박 2일 미투 이어말하기 #"성폭력 몇몇 괴물의 문제 아닌 사회와 조직 문제" #오는 23일에는 미투 촛불집회도 열기로

22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2018분 이어말하기 행사'에서 한 참가자가 발언하고 있다. 최규진 기자

22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2018분 이어말하기 행사'에서 한 참가자가 발언하고 있다. 최규진 기자

“모르는 아저씨가 삼촌 친구라며 다가왔고 아무것도 모르는 6살 여자아이가 성폭력을 당했다. 20대 삼촌, 고등학생 사촌, 아버지 직장 동료도 내게 손을 댔다.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여름날 ‘덥겠다’며 내 팬티를 벗긴 것을. 나는 그놈의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상상을 수없이 했다.”(40대 논술 강사 여성 B씨)

“6살 때 한 남성이 극장에서 영화가 안 보이니까 올려주겠다면서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몸을 더듬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모르는 남성이 교복 윗도리를 잡아채는 일도 있었다. 그 당시 생각 못 했지만 이게 성희롱이란 걸 이번에야 알게 됐다.”(50대 여성활동가 C씨)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측은 22일 오전 9시 22분부터 '2018분 이어말하기' 행사를 열고 다음날 오후 7시까지 2018분(33시간38분)동안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규진 기자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측은 22일 오전 9시 22분부터 '2018분 이어말하기' 행사를 열고 다음날 오후 7시까지 2018분(33시간38분)동안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규진 기자

22일 서울 종로 청계광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각계각층의 여성들은 자신이 겪은 성폭력 피해에 관해 이야기했다. 마이크를 잡은 여성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을 이어가다 한참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따금 고개를 떨굴 때면 지켜보던 다른 여성들이 박수와 환호로 응원을 보냈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의 모임인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시민행동’은 이날 오전 청계광장서 ‘2018분 이어 말하기’ 행사를 시작했다. 이번 행사는 오전 9시 22분부터 23일 오후 7시까지 2018분(33시간 38분) 동안 이어진다.

이날 행사는 인터넷과 현장접수 등을 통해 참가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겪은 성폭력과 성차별을 규탄하는 자유발언으로 채워졌다. 앞서 주최 측은 “성폭력이 만연한 세상에 분노하고, 변화를 촉구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발언자로 참가할 수 있다. 변화에 동참하고 싶은 누구나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With you’‘#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 ‘Speak Out’ 등의 피켓을 들고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연대의 의미를 나타내는 검은색 끈을 묶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주최 측 관계자는 “검은색 끈은 피해자의 목소리와 가해 사실 고발을 계속해서 이어 말할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2018분 이어말하기’ 행사에 앞서 주최 측과 참가자들이 2018분간 ‘미투’를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서로 검은 끈을 이어가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권유진 기자

‘2018분 이어말하기’ 행사에 앞서 주최 측과 참가자들이 2018분간 ‘미투’를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서로 검은 끈을 이어가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권유진 기자

청계광장 한쪽에는 참석자들의 글이 적힌 길이 25m 대형 게시판이 세워졌다. 게시판에는 ‘도둑질은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왜 강간은 피해자가 예방해야 하는 문제라고 해야 하는가’’초등학생이던 날 추행했던 자식아. 부끄럽고 비겁한 줄 알아라’‘나는 회사의 꽃·치어리더·꽃뱀·기쁨조도 아니다’ 등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서울 청계광장에 세워진 길이 25m의 '대자보 광장:너에게 보내는 경고장' 게시판. 최규진 기자

서울 청계광장에 세워진 길이 25m의 '대자보 광장:너에게 보내는 경고장' 게시판. 최규진 기자

앞서 사회를 맡은 최진협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은 “(미투 폭로가 이어진) 이제야 성폭력 문제를 몇몇 괴물의 문제로 봉합하고 떼어내려 하지만 괴물을 키우고 두둔한 것은 조직의 문화와 법률 해석에 있다"며 "괴물은 개인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죄어 온 조직과 사회, 규범"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폭행과 협박을 동반해야만 성폭력이 된다는 법률, 기울어진 법 해석과 사법 시스템, 피해자가 조직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가해자가 지지받는 조직문화, 피해자가 오히려 역고소를 당하는 상황,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정부 대책을 모든 사회가 의지를 갖고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이번 행사가 끝나는 23일 오후부터 청계광장서 ‘성차별, 성폭력 끝장 문화제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란 촛불 문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최규진·권유진·정진호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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