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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현장의 청년들 “우리보다 기업을 더 생각하나”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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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의 이슈 현장

지난해 5월1일 서울 대학로에서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부당한 방송 제작환경을 고발하는 플래시몹 퍼포먼스를 벌였다. [사진 청년유니온]

지난해 5월1일 서울 대학로에서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부당한 방송 제작환경을 고발하는 플래시몹 퍼포먼스를 벌였다. [사진 청년유니온]

‘청년의 삶을 바꾸는 특단의 일자리 대책’. 정부는 지난주 15일 청년 일자리 대책을 발표하면서 이런 표현을 썼다. 3·15 대책의 골자는 정부의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중소·중견기업과 대기업 취업자 간의 실질소득 격차를 해소하고, 중소·중견기업의 신규 고용 지원을 파격적으로 늘리며, 청년 창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종합선물 세트 같은 대책이 나왔는데 정책 수요자인 청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청년 실업이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고질이 된 탓인지 청년 이슈를 끌고 가는 단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청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을 찾았다.

정부는 “특단의 일자리 대책” #청년유니온 “특단이라기엔 민망” #최저임금·근로시간 단축 문제 #일자리대책으로 보완하는 건가 #‘4대강’처럼 생태계 고려 부족 #재정으로 띄운 임시 부교일뿐

“청년유니온은 자신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아도, 포기하거나 잃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청년유니온 홈페이지(http://youthunion.kr)를 보다가 이 문장에 눈길이 갔다. 당신을 포기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자는 나직하지만 강력한 구호였다. 2010년 3월에 창립한 청년유니온은 한국의 첫 세대별 노조다. 만 15~39세의 청년이면 구직자든 실업자든 고용형태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20일 찾아간 노조 사무실은 서강대 맞은편(서울시 마포구 백범로 24) 건물 4층. 청년 주거문제와 씨름해온 ‘민달팽이 유니온’과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었다.

“일하고, 꿈꾸고, 저항하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청년유니온과 함께하는 이들은 현재 후원회원 600여 명을 포함해 2000명 정도라고 했다. 의외로 회원과 조합원이 많다고 했더니 “힘은 숫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사회적 공감대에서 나온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청년유니온은 창립 이후 청년의 고용 안정과 노동권 보장을 위해 다양한 실태조사와 캠페인을 벌여 주목받았다. 따뜻한 피자보다 ‘안전한 피자’를 강조하며 피자 배달 30분제를 폐지했고,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주휴수당 지급을 이끌어낸 것도 이들이었다.

청년 일자리 대책이 발표된 15일, 청년유니온은 “‘특단’이라기엔 다소 민망한 대책”이라는 논평을 내놨다. “파격적인 부분이 없지 않으나, 크게 보아 이전 정책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사실 맞는 말이다. 새로 취업하는 청년에게 연 1035만원의 혜택을 준다는 게 대책의 골자인데, 청년내일채움공제나 소득세 감면 등은 기존 정책을 확대한 것이다. 김 처장은 “과거 정책에 비해 채찍보다 당근을 많이 제시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며 “청년 구직자는 경력 구직자에 비해 인맥이나 경험이 부족한 만큼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3년 4월30일 청년유니온이 전국단위 노동조합 신고필증을 발급받았다. 왼쪽에서 둘째가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 당시 조직팀장이었다. [사진 청년유니온]

2013년 4월30일 청년유니온이 전국단위 노동조합 신고필증을 발급받았다. 왼쪽에서 둘째가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 당시 조직팀장이었다. [사진 청년유니온]

다른 청년단체들의 반응도 들어봤다. 전반적으로 정부가 나름 애는 썼지만 정작 청년들이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지 못해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몇 가지 포인트로 정리해봤다.

첫째, ‘기업’보다는 정책 수요자인 ‘청년’을 더 중심에 놓고 전달 체계를 설계했어야 했다. 김미진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사무총장은 “청년 취업자의 장기근속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청년보다 중소기업 입장을 더 배려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3·15 대책을 준비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요자 중심의 정책’을 주문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경제구조개혁국장은 “청년 취업자들에게 대한 직접 지원을 확대한 점이 과거 대책과의 큰 차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청년들은 왜 불만일까. 청년유니온은 3·15 대책 논평에서 “근속을 핵심요건으로 하다 보니 일터에서 겪는 불합리함을 견뎌야 하는 문제가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김영민 사무처장은 “내일채움공제에 가입한 청년 취업자는 (정부가 주는 혜택을 받으니) 임금을 동결하겠다는 사용주도 있었다”고 말했다. 기존 2년짜리 내일채움공제(청년 300만원+정부 1300만원)는 이직해도 가입할 수 있지만 새로 발표한 3년짜리 공제(청년 600만원+정부 2400만원)는 생애 최초 중기·중견기업 취업자만 가입할 수 있고 이직자는 혜택이 없다. 물론 두 가지 공제 중에 선택할 수 있고, 가입기한을 취업일로부터 3개월로 연장하는 등 취업자의 직장 탐색기간을 감안하긴 했지만 중소기업 취업자에겐 족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힘겨워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생애 첫 취업자 대상의 3년짜리 공제와 기존 재직자 대상의 5년짜리 공제를 연계하는 사람은 8년간 한 직장에 묶인다. 무작정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왕 혈세를 쓰기로 했다면 청년들이 원하는 대로 근속 부담이 없는 개인형 공제에 가깝게 제도를 설계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목돈 마련과 함께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은 발전 가능성, 일터 분위기, 근로조건 등을 고려해 정부가 따로 인증 마크를 붙여주지 않더라도 좋은 중소·중견기업을 찾아 ‘알아서’ 이동할 것이다. 이렇게 시장원리가 작동하도록 하는 게 김동연 부총리가 강조하던 제대로 된 사회적 유인체계 아니던가.

지난해 9월 국회 앞에서 청년유니온 등 청년단체들이 청년기본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뉴시스]

지난해 9월 국회 앞에서 청년유니온 등 청년단체들이 청년기본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뉴시스]

둘째, 취업자수와 취업률이라는 공식 통계수치에 연연하다 보니 일자리의 질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는 “한계기업을 퇴출시키는 산업 구조조정 없이 청년들에게 중소기업으로 가라는 건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해외 자원봉사 등 해외 취업도 양질의 일자리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태응 전국청년상인연합회 대표는 “구직 못 한 청년을 창업으로 유도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창업했다 실패하면 재기하기조차 어렵고, 지금도 죽어가는 전통시장에서 청년몰 사업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셋째,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시장 유연화가 절실한데 대책에선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백경훈 ‘청년이 여는 미래’ 대표는 “기성세대와 정규직이 기득권을 양보하는 노동 개혁이 필요한데, 이런 불편한 얘기는 안 보인다”고 평가했다.

어쨌든 청년들은 3·15 대책의 수혜자다. 그래선지 대책 자체의 불가피성은 다들 인정했다. 전문가 반응은 더 신랄하다. 노동 문제에 정통한 경제학자가 익명을 전제로 한 말이다. “청년 일자리 대책은 ‘노동의 4대강 사업’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양극화된 노동시장을 인위적으로 잇는 부교(浮橋)를 띄운 것이다. 환경과 생태계를 무시했던 4대강 사업처럼 일자리 생태계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 강물을 막고 콘크리트로 보(洑)를 만들 듯, 재정으로 임시 부교만 만들었다. 능력 있는 우리 청년들을 중소기업에 구겨 넣으려고만 하지 말고 규제를 풀어 중국 텐센트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대강 사업에 부정적인 현 정부는 아마 펄쩍 뛸 것이다. 부디 정부가 의도한 대로 부교 위를 청년들이 많이 건너갔으면 한다. 하지만 튼튼한 교각 없이 세워진 부교가 3~4년 뒤 과연 어떤 모습일지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서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