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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삼성물산 대표 이사선임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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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연합뉴스]

전북 전주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연합뉴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최치훈 대표와 이영호 사장(건설부문장)의 이사 선임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최치훈 대표, 이영호 사장 이사 선임 반대키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승인했다는 이유 #21일 국민연금 전문위원회에서 반대 결정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21일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전문위원회는 삼성물산의 사내 이사로 재선임을 요청한 최 대표와 이 사장, 사외이사 재선임을 요청한 이현수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에 대해 22일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감사위원 후보로도 요청한 상태다.

전문위원회는 "4명의 이사 후보가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계획 승인을 결의한 이사회 구성원이었다. 이사의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선관주의 의무) 수행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고 판단하여 반대로 결정하였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을 현 정부의 '적폐 청산'의 일환으로 해석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박근혜 정부의 적폐의 출발점이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찬성도 적폐의 일종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전문위원회는 사외외사로 추천된 필립 코셰(전 GE 최고생산성책임자), 사내 이사로 추천된 고정석 사장(상사 부문장), 정금용 부사장(리조트 부문장)은 합병 결정과 무관하다는 이유로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 16일 국민연금이 의결권한을 대폭 강화한 이후 첫 사례다. 국민연금은 이사 선임 반대 사유에 '감시 의무를 소홀히 한 자'를 명시했다. 소속 회사나 계열사에 재직할 때 명백히 기업가치를 훼손하거나 주주권을 침해한 행위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이사(사외이사 포함)는 재선임을 반대하기로 못박았다.

최경일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장은 "이번 결정은 16일 개정된 의결권 지침에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 당시 경영진이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유리하게 산정되도록 노력했어야 하는데 그걸 소홀히 했다고 봤다. 주주권 제고 차원에서 반대를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위원회는 외부 전문가 8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날 6명이 참석해 과반수(4명 이상)가 구두로 찬성 의견을 냈다고 한다.

국민연금이 반대했지만 삼성물산이 이사 선임을 못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지분을 5.7% 보유한 3대 주주이다. 최대 주주는 특수관계인인 삼성일가(39%)이고 2대 주주는 KCC(8.97%)다. 삼성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된다. 또 ISS(국제의결권 자문회사)가 찬성 권고안을 냈다. 대개 외국인 주주들은 이를 따른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이날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올 하반기 중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 주주권 강화 세부 방안을 확정하게 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을 그 방향으로 가려는 포석으로 해석한다. 최영권 하이자산운용 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동의한 곳에선 의결권 행사와 연관된 일이라 (국민연금의 결정에 대해) 주의 깊게 보고 있다”며 “의결권 행사, 그에 따른 기업 가치 평가 흐름이 많이 달라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손성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의결권 지침 개정 이후 첫 반대표를 던진만큼 앞으로 몇 번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면서도 "판단이 마무리되지 않은 기업의 지난 결정을 두고 이사 선임 이유로 삼는다면 논란이 생길 여지가 있다. 또한 당시 이러한 결정에 참여한 당사자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억울한 사례가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소액주주 입장에선 합병 비율에 있어 불리한 결정이었다는 점에서 그를 성사시킨 경영진에 책임을 묻는 (국민연금의) 결정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국민연금 운영과 결정이 정부로부터 독립적이란 전제가 있어야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조현숙·정종훈 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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