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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득표율로 압승한 푸틴, 4기 과제는 '경제·후계자'

중앙일보

입력

18일(현지시간) 치러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역대 최고 득표율을 경신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AP=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치러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역대 최고 득표율을 경신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AP=연합뉴스]

투표율 60%대에 득표율 76.6%.

97% 개표 결과 76.6% 얻어 2위와 65%P차 #원유 의존적 경제, 고령화 문제 등 해결해야 #장기 집권에 따른 권력 이양 연착륙도 과제로

18일(현지시간) 치러진 러시아 대선의 승자는 이변 없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었다. 게다가 여태껏 치른 대선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푸틴은 2000년 첫 출마에서 53%를, 2004년 재선 땐 72%를 얻었다. 헌법에 따라 3연임이 불가능하자 4년 간 총리로 물러났다가 2012년 3기 도전에 나서 63.6%를 획득했다. 이번 대선 개표가 97% 마무리된 가운데 푸틴은 역대 최고 득표율을 경신했을 뿐 아니라 2위(파벨 그루디닌·11.9%)와의 격차도 역대 최대인 65%P차로 벌렸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저녁 모스크바 시내 마네슈 광장에서 열린 크림 병합 4주년 기념 콘서트 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유권자들이 지난 수년간의 성과를 인정해 준 것”이라며 감사를 전했다. 3월 초 영국에서 발생한 전직 스파이 독극물 중독 사건에 대한 견해도 처음으로 밝혔다. 그는 “제 정신인 사람이라면 러시아가 대선 직전에 이런 무모한 일을 꾸몄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 정부 배후설’에 반박했다.

푸틴 캠프 측은 ‘스파이 스캔들’로 인한 서방과의 외교 갈등이 오히려 선거에 도움됐다는 반응을 내놨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안드레이 콘드라쇼프 푸틴 대선 캠프 대변인은 "투표율이 예상보다 8~10% 높았다. (외교관 추방 등 강공으로 나온) 영국에 감사하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선관위는 최종 투표율이 2012년 대선(65.25%)을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마네슈 광장에서 열린 크림 합병 4주년 기념 집회 및 음악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마네슈 광장에서 열린 크림 합병 4주년 기념 집회 및 음악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승을 거뒀지만 ‘푸틴 차르’의 과제는 이제 시작이다. 혹독한 정적 탄압 등으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푸틴에게 몰표가 가긴 했지만 집권 3기의 경제 성적표는 과히 좋지 않다. 2014년 크림 합병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은 데다 국제 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2015~2016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기도 했다. 비록 지난해 성장률이 1%대로 회복되긴 했지만 2000년대 초·중반 견인했던 성장 모델의 한계가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푸틴은 지난 2월 대선후보 TV 토론회 때도 경제 문제가 거론되자 침묵을 지켰다.

티모시 애쉬 블루베이에셋매니지먼트 이머징 시장 선임 전략가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푸틴 집권기간 외환시장이 안정됐고 인플레이션은 낮아졌지만 성장률이 더딘 편"이라며 “빈곤선을 벗어난 러시아인이 많아졌어도 일자리 부족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유 의존적인 경제,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노동인구 부족 등도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꼽힌다.

러시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들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수입 소비재의 국내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낙후했던 극동지역 개발을 경제 성장 돌파구로 보고 있다. 김상원 국민대 교수는 “러시아가 극동 개발에 중국 투자를 대거 끌어들이고 있다”면서 “푸틴의 신동방정책과 문재인 대통령의 신북방정책 간에 접점이 큰 만큼 한국 기업도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3연임을 금지하는 현행 러시아 헌법에 따르면 푸틴은 4기 임기가 끝나는 2024년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푸틴은 승리 확정 후 차기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우습다”면서 “내가 100살까지 권좌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농담조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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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이 국가주석 임기 제한 규정을 삭제한 것처럼 푸틴이 헌법을 개정해 3연임을 할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 2024년이면 푸틴도 72세가 된다. 앞서 푸틴은 미국 N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헌법을 개정한 적이 없으며 현재 그럴 의도도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문제는 20년 가까운 집권 기간 푸틴이 치켜든 ‘강대국 러시아의 부활’ 깃발 아래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비러시아적’인 것으로 배척됐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푸티니즘(Putinism·푸틴주의)이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지난해 12월 현지 여론조사전문기관 '레바다-첸트르'의 조사에 따르면 78%의 러시아인들은 국가적 과제 해결을 위해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권력의 급격한 변화는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다. 푸틴으로선 '포스트 푸틴'시대를 염두에 두면서 후계 구도를 관리하고 권력 이양의 연착륙을 준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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