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조백일장3월] "버려진 소파 보니 죽음 떠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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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달에 이어 3월에도 시조백일장 첫 응모자가 장원을 차지했다. 인천에서 동갑내기 남편(김지헌씨)와 함께 컴퓨터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채연(43.사진) 씨다. 전화로 당선소식을 알렸더니, 처음엔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돼요. 저는 아직 한참 배워야 합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난 뒤에야 수화기 너머에서 숨을 가다듬는 소리가 건너왔다. 나중에 안 일인데, 갑작스런 당선 전화를 받고 점심 때 먹은 김밥이 끝내 탈을 일으켰단다.

김씨는 2년 전 인터넷 카페에 생활 일기를 남기곤 했다. 그 글을 본 한 시조시인이 시조를 권한 게 계기가 됐다. 하나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시조에 대해 딱히 아는 것도 아니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유명 작품을 일일이 베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베끼기만 했다. 그 뒤에야 음률이니 음보니 따위를 분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이 붙어 한번 써본 시조가 덜컥 붙은 것이다.

"남편이랑 동네 근처로 새벽 운동을 나가는데 벽에 기댄 낡은 소파가 눈에 띄더라고요. 한 달에 한번 정도 남편과 함께 독거노인 목욕시키는 자원봉사를 하거든요. 방치된 낡은 소파를 보니 죽음을 앞둔 독거노인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떠올랐어요. 그래서 한번 써봤어요."

어릴 적 고향에서 꼴 먹이러 나갔다 소를 잃어버린 일이 있었단다. 소설 쓴답시고 소에 신경을 쓰지 못한 탓이었다. 그 뒤로 그에게 문학은 남의 얘기였다. 하나 지금은 아니다. 3월 당선작은 이미지의 활용이 참신하다는 평을 받았다. 당선자는 "기쁘기보다는 걱정이 앞선다"며 "시조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손민호 기자



비유의 옷 입히는 직관력 돋보여

심사위원 한마디

'구겨진 흰 종이와 같은 고독'이 효과적인 이유

한 편의 시조를 창작하는 데 이미지와 비유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미지와 비유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만약 그것이 의미를 전달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써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시는 가장 응축된 언어로 미묘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해야만 한다.

이를 테면 '고독'이나 '그리움'을 나타내는데 '상처처럼 남은 고독'이라든지 '추억 같은 그리움'으로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구겨진 흰 종이와 같은 고독'이나 '새벽 종소리 같은 그리움'이 훨씬 효과적이다. 왜 그럴까. '고독'이나 '그리움'을 '상처'나 '추억'으로 비유하는 것은 추상을 추상으로 비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겨진 흰 종이'나 '새벽 종소리'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시가 관념과의 끝없는 싸움이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 말을 관념어를 쓰지 말라는 얘기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시의 속성상 관념어를 쓸 수밖에 없는데 이 관념을 육화(肉化)시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한 옷을 입히고 색감을 주어야하는데 이것이 바로 이미지와 비유로 가능한 것이다.

'불꽃같은 이 허기'의 직관력

이달의 작품으로 선정한 작품들을 읽어보고 시적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장원작에서 3개의 비유 중 둘은 잘 쓰였지만 하나는 그렇지가 않다. '삶'과 '직립'을 동일시한 것, '의자'를 '불꽃같은 이 허기'로 비유한 것은 직관력이 뛰어난 좋은 표현이다. 그러나 '독거노인 죽음'으로 비유한 것은 죽은 비유다.

차상작에도 첫수의 중장과 종장에서 비유가 활용되고 있다. 이 비유는, 암울한 정서를 조용히 내면화하려는 시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차하의 작품은 비유보다는 이미지를 잘 살린 부분이 두 군데 있다. 첫 수의 종장에 쓰인 청각적 이미지와 둘째 수 '꽃향기도 울리고요'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감각적 이미지(후각→청각)가 바로 그것이다.

눈에 띄는 새로운 이미지나 비유가 필요

갈수록 좋은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띈다. 민은숙씨의 '난을 치며'에서 '난꽃대'를 '개밥바라기 별'로 비유한 것이라든지, 이갑노씨의 '저녁에 뜨는 집', 김선화씨의 '봉숭화 꽃물', 장분례씨의 '장독대에서', 변정용씨의 '봄의 혀' 등의 작품을 주목했다. 많은 비유와 이미지가 쓰였지만 눈에 들지는 못하였다. 좋은 시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두 군데 눈에 띄는 새로운 이미지나 비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삼 강조한다.

<심사위원: 유재영.이지엽>



응모안내=매달 20일쯤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 매달 말 발표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해마다 매월 말 장원과 차상.차하에 뽑힌 분들을 대상으로 12월 연말장원을 가립니다. 연말장원은 중앙 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자(등단자격 부여)의 영광을 차지합니다. 매월 장원.차상.차하 당선자들에겐 각각 10만.7만.5만원의 원고료와 함께 '중앙 시조대상 수상작품집'(책만드는집)을 보내드립니다.

▶보내실 곳=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 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우:100-759), 전화번호를 꼭 적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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