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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료 수백억 대박 … '리틀 펠레'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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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브라질 국가대표 카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상파울루의 빈민가 골목에서 꼬마들이 공을 차며 놀고 있다. 상파울루(브라질)=김태성 기자

크루제이루 유소년클럽에서 유학 중인 한국 선수들이 국가대표에 뽑힌 이호를 응원하는 문구를 들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벨루오리존치=김태성 기자

상파울루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가면 항구도시 산토스에 닿는다. 산토스는 도시 이름보다 축구황제 펠레가 활약한 브라질 축구 클럽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펠레는 16세이던 1956년에 산토스에 입단, 74년까지 뛰었다.

산토스 경기장 1층에는 50평 남짓한 클럽 박물관이 있고, 이 중 3분의 1 정도를 펠레관이 차지하고 있다. 옷감을 기워 만든 축구공, 축구화, 노트, 산토스 유소년 클럽 졸업장 등 펠레가 기증한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최근에 가장 돋보인 선수는 호비뉴(22.레알 마드리드)다. 2002년 산토스에 입단한 호비뉴는 환상적인 드리블과 골 결정력으로 2002년과 2004년 산토스의 브라질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지난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산토스에 이적료 1700만 유로(약 200억원)를 안겨주었다.

산토스 경기장 바로 옆에는 펠레가 30년간 단골로 다닌 이발소가 있다.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 아쉽게 이발사는 없었고, 셔터는 내려져 있었다. 이발소 바로 옆 선술집 주인은 펠레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자 졸린 눈을 번쩍 떴다. "펠레가 일주일 전에도 이발하러 왔다 갔어요. 그는 정말 친절하고 검소합니다. 세상에 펠레 같은 선수는 나올 수 없어요. 호비뉴가 잘하긴 하지만 펠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죠." 그는 요즘 어린 선수들이 너무 많이 외국으로 팔려 나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산토스 17세 팀 감독인 조제리누 마르칭스(49)를 만났다. 호비뉴를 스카우트해 키워낸 그는 "다른 클럽들과 경쟁이 워낙 치열해 돈을 꽤 많이 주고 데려왔다. 호비뉴가 개인 플레이에 맛을 들인 상태라서 동료를 활용하는 플레이를 가르쳤다"고 말했다. 산토스에는 연령별 팀마다 스카우트가 있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망주를 뽑아 온다고 한다. 지난해 중학 무대에서 골잡이로 이름을 날린 정대운(16.서울공고)도 이곳 16세 팀에서 뛰고 있다.

'브라질 최고의 수출 상품은 축구 선수'라는 말이 있다. 제2의 호나우두.호나우디뉴.호비뉴를 꿈꾸는 아이가 전국에 수백만 명 있다. 그중에 억세게 운이 좋은 선수만이 프로 구단 스카우트의 눈에 띈다. 클럽들은 선수 하나만 잘 뽑아 키워내면 이적료로 수백억원을 벌 수 있다.

최근 가장 많은 선수를 외국에 판 구단은 호나우두(레알 마드리드)를 배출한 크루제이루 클럽이다. 2003년 브라질 리그에서 우승한 뒤 주전 14명을 한꺼번에 팔아버리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짭짤한 장사를 했다. 2부 리그 아메리카 팀에서 프레디(27)라는 선수를 50만 헤알(약 2억5000만원)에 사 와서 14개월 만에 프랑스 리옹에 1300만 유로(약 150억원)를 받고 팔았다.

크루제이루 클럽은 12세부터 19세까지 나이별로 20~30명 정도씩 선수들을 데리고 있다. 프로 팀은 50명이다. 클럽의 기술고문인 반투일은 "열두 살 아이들끼리 하는 대회까지 스카우트가 찾아가 유망주를 뽑아 온다. 1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테스트를 한다. 프로 바로 밑 단계인 주니어(19세 팀)는 '선수들의 무덤'이다. 그 나이에 프로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면 선수로서 이미 죽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호나우두는 16세 때 프로로 올라왔다고 한다. 12세부터 주니어까지의 선수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살며 용돈을 받는다. 술.담배를 하다 걸리면 가차 없이 퇴출이다.

크루제이루 프로팀 선수들이 프리킥 연습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둘째가 이호를 가르쳤던 에메르손 코치. 벨루오리존치(브라질)=김태성 기자

취재진이 크루제이루 클럽을 찾아갔을 때 다음날 경기를 앞둔 프로 팀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공을 이용한 간단한 게임과 미니 경기를 했다. 영양사 두 명이 훈련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컨디션에 따라 식단이 달라진다.

브라질은 전국 리그 외에 주별 리그가 있어 거의 1년 내내 경기가 이어진다. 한 해 60경기 정도를 치른다. 삼바 리듬과 골목 축구로 단련된 선수들은 철저한 관리와 끊임없는 실전을 통해 한 단계 더 진화한다. '메이드 인 브라질'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토스.벨루오리존치(브라질)=정영재 기자

"한국 축구 유학생들 기본기 익히고 와라 막연히 왔다간 실패"

크루제이루 클럽은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벨루오리존치에 있다. '아드보카트의 황태자'로 떠오르고 있는 국가대표 이호(22.울산 현대)가 2001년부터 2년간 축구 유학을 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제2의 이호'를 꿈꾸는 한국 선수 20명(13~17세)이 이곳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

'토카'라고 불리는 클럽하우스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하루는 오전 6시30분에 시작된다. 숙소 앞 커다란 호수를 따라 조깅한 뒤 아침을 먹는다. 천연 잔디구장에서 오전에 한 시간 반 기술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브라질 선수들과 함께 두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오후 7시부터는 학교 수업이다. 포르투갈어를 먼저 배우고, 언어가 어느 정도 숙달되면 수학.영어.사회.역사 등을 공부한다. 고1부터는 스페인어도 배운다. 오후 10시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녹초가 된 몸을 누인다.

몸은 힘들어도 아이들은 재밌다고 한다. 홍승욱(13)군은 "코치 선생님이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셔서 좋아요. 5월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축구 교본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진 알렉산더 코치는 "한국 선수들은 매우 적극적이고 기술 향상 속도도 빠른 편"이라고 했다. 반면 '생각하는 축구' '창의적인 플레이'는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토요일은 숙소를 떠나 선수들을 관리하는 교민 문대찬씨 집으로 간다. 따뜻한 밥과 찌개 등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한 달에 두 번씩 크루제이루 클럽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로 놀러가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곳이 낙원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 브라질 선수들은 하지 않는 오전 기술훈련을 한국 선수들만 하는 것은 그만큼 기초 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호를 가르쳤던 에메르손 코치는 "기본기를 제대로 익히지 않고 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어떻게 되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오는 선수는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벨루오리존치=정영재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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