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now] 지구촌 마천루 '두바이의 그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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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초고층 빌딩이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 마구 치솟고 있다.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두바이'건설 현장(사진위). 그러나 여기서 일하는 인도·필리핀 출신 노동자들은 박봉과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사진아래). 최근엔 노동자들이 집단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두바이 AP=연합뉴스]

"처음엔 '두바이 드림'을 안고 왔습니다. 돈을 모아 고향에 돌아간다는 꿈이지요. 하지만 그 꿈은 금세 악몽으로 변했습니다. 이곳은 기회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5년 전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에 온 인도 노동자 라지 쿠라만(28)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세계 최고층이 될 '부르즈 두바이' 빌딩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9억 달러를 들여 2008년 완공될 이 건물은 현재 36층까지 올라갔지만 최종 층수는 비밀이다. 그런데 쿠라만은 요즘 일을 나가지 않고 있다. 동료와 함께 파업 중이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IHT) 보도에 따르면 21일 밤 주로 인도.필리핀 출신인 이곳 노동자 2500여 명이 폭동을 일으켰다. 직접 원인은 퇴근길 버스의 도착 지연이었다. 쿠라만은 "버스가 늦어지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기다려야만 한다. 기온이 40도를 넘는다. 화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분노한 노동자들은 건설장비와 사무실 집기를 마구 부쉈다. 23일에는 두바이 시내에서 수천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체납임금 지급과 의료지원 확대, 그리고 인간적 대우를 요구하며 이들은 며칠째 고용회사 및 두바이 정부와 대치하고 있다.

매년 두바이로 몰려드는 수만 명의 인도인들을 맞이하는 곳은 대부분 공사현장이다. 일반 노동자는 하루 미화로 4달러, 숙련공은 7달러 정도를 받는다. 2교대로 12시간을 일하지만 쿠라만이 받는 월급은 고작 150달러. 이 중 반은 고향에 보낸다. 먹고 자고 일하는 외에 지난 5년간 다른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싸구려 담배가 유일한 낙이다. 수천 달러의 빚을 내 해외 인력송출 브로커에게 소개비로 주고 이곳에 왔지만 저축은커녕 빚 갚을 돈을 마련할 길도 막막하다.

그는 "인도에서 이렇게 장시간 일했다면 차라리 돈을 모았을 것이고 빚도 없었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빚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두바이 거주자 150만 명의 3분의 2인 100만 명이 아시아 각국에서 온 이민자다. 이들은 원래 주민인 아랍인들에게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 우선 국적을 부여받지 못한다. 도착 즉시 고용주에게 여권을 빼앗기며 거주 지역도 건설 현장에서 한두 시간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의 합숙소로 제한된다. 정해진 노동 외 다른 일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처지를 비관해서인지 지난해 두바이에서 인도인 70명을 포함한 84명의 아시아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중동에서 가장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두바이의 그늘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 바로잡습니다

3월 28일자 12면 '두바이의 그늘' 기사에서 인도.필리핀 출신 노동자들이 소요를 일으킨 곳은 세계 최고층이 될 부르즈 두바이 타워 빌딩 건설 현장이 아니라 고급 주택단지를 짓고 있는 인근 올드타운 현장이기에 바로잡습니다. 부르즈 두바이 타워 빌딩을 시공하고 있는 삼성물산 측은 "타워 공사는 이번 폭동과 상관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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