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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두 의원 사퇴를 민주당이 만류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민병두(서울 동대문을, 3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언했던 대로 12일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민 의원은 이날 오후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이미 밝힌대로 의원직을 사퇴한다”며 “제가 한 선택으로 제 말에 귀를 기울여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민 의원은 지난 10일 한 매체에서 성추행 의혹이 보도된 직후 즉각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지만 의원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휴일 기간 중 당 지도부가 줄기차게 사퇴를 말렸지만 사무처가 업무를 재개한 이날 결국 사퇴서를 냈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자 즉각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중앙포토]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자 즉각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중앙포토]

하지만 정치권에선 민 의원의 사퇴서가 진짜로 처리될지 두고봐야 한다는 반응이 많다. 민주당 입장에선 적극적으로 의원직 사퇴를 막아야 할 이유가 여럿이기 때문이다. 우선 민 의원이 금뱃지를 떼게 되면 이번 일이 향후 비슷한 사건이 생겼을 때 ‘기준 잣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달리 상대적으로 사안이 가벼운 민 의원까지 의원직에서 물러나게 되면 앞으로 미투(MeToo) 운동의 확산에 따라 의원들의 줄사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민주당의 한 의원은 “민 의원이 이번 일로 물러나게 되면 앞으로 누구에게 어떤 불똥이 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렸다. 추미애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렸다. 추미애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민주당이 원내 제1당을 유지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현재 민주당은 121석, 자유한국당은 116석이다. 앞으로 6·13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민주당 의원 2~3명이 의원직을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 또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 지역구가 최소 7곳이나 된다. 재·보선 성적에 따라 1당과 2당이 바뀔 수 있다. 만약 민주당이 2당이 되면 국회의장을 한국당에 넘겨주게 돼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에 치명적이다. 자칫 지방선거 이전에 1당 자리를 내주면 지방선거 기호 1번도 한국당이 가져간다.

이 때문에 민주당 지도부는 이미 “현역 국회의원의 지방선거 출마는 최대한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해양수산부 장관인 김영춘 의원이 지난 11일 부산시장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날 이개호 의원이 전남지사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한 석이 아쉬운 민주당 입장에선 민 의원을 선선히 보내주기 어렵다.

만약 민 의원이 사퇴해 서울 동대문을 보궐선거가 열릴 경우 민주당이 후보를 내기 난감하다는 문제도 있다. 민주당 당헌 112조 ②항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ㆍ보선을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성추행 문제를 ‘중대한 잘못’으로 볼 경우 민주당이 보선에 후보를 내는 건 당헌 위반인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당헌 112조 [홈페이지 캡처]

더불어민주당 당헌 112조 [홈페이지 캡처]

이런 사정들을 잘 아는 민주당 동료 의원들은 민 의원의 사퇴를 계속 말리고 있다. 이날 박범계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지금 국면에서는 사실관계의 규명이 더 진행돼야 하지 않느냐”며 “지금 (사직 여부에 대한) 당의 공식 입장을 정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민 의원의 사퇴서는 처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회법 제135조 ①항에는 ‘국회는 그 의결로 의원의 사직을 허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국회 본회의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려면 국회 교섭단체 대표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민주당이 사퇴 안건을 올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홍문표 한국당 사무총장은 “본인의 소신에 의해 사퇴를 한 사람에게 다시 철회하라고 쇼를 하는 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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