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아쉽네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알파인스키 시각장애 부문에 출전한 양재림(29)의 표정에선 아쉬움이 엿보였다. 11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린 첫 종목 수퍼대회전에서 11명 중 9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양재림은 이날 가이드 고운소리(23)와 함께 10번째 순서로 출전해 1분43초03의 기록으로 참가 선수 11명 중 9위를 기록했다.
시각장애 스키는 블루투스 무선기를 활용해 비장애인 가이드가 앞장서서 슬로프를 내려오면서 신호를 해주면 장애인 선수가 따라내려오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국내 시각 장애 선수 중 독보적인 기량을 지닌 양재림은 4년 전 소치 패럴림픽에 출전해 대회전에서 4위를 차지했다. 양재림은 "자국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이 처음이고, 첫 경기라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하루 쉬면서 다음 경기부터는 실수하지 않도록 준비를 잘 하겠다"고 했다. 첫 패럴림픽인 고운소리도 "스타트를 하고 작은 실수가 있었다. 언니에게 조금 미안하다. 긴장을 했다"고 전했다.
양재림은 시각장애 3급이다. 7개월만에 태어난 그는 산소 과다 투입으로 인한 미숙아 망막증 때문에 시력을 잃었다. 수술을 10차례 이상 받아 오른쪽 눈은 일반인의 10분의 1정도를 볼 수 있지만 왼쪽 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경기 등급인 'B2'는 일반인이 60m 떨어진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을 2m 앞까지 다가가야 알아볼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양재림은 어머니 최미영(57) 씨가 균형감각과 건강을 위해 여러 운동을 권유했고, 6살 때 스키를 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09년 이화여대 동양화과에 장애인특별전형으로 입학한 그는 한동안 놓았던 스키 폴을 잡았다. 장애인스키협회는 경험이 있는 양재림에게 전문 선수로의 길을 권유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반대했다. 스키장에서 반사되는 빛이 눈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럴림픽 무대를 밟기 위해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소치에 이어 평창 대회까지 출전했다. 4년 전 남자 가이드 이지열과 호흡을 맞췄던 양재림은 3년 전부터는 대학 후배인 고운소리와 함께 하고 있다.
그래도 양재림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가족과 친구는 물론 자신을 응원해준 한국 팬들의 함성 덕분이었다. 양재림은 "경기장이 멀고 날씨가 추워 선뜻 '와달라'고 말하지 못했는데 많이 찾아줬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환호하고 박수를 쳐줘 감사했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고운소리도 "많은 분이 와주셔 놀랐다. 국내에서 열린 대회라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양재림은 13일 수퍼복합(활강과 회전을 한 차례씩 경기해 합산하는 종목), 15일 회전, 18일 대회전에 출전한다. 특히 주종목인 회전에서는 메달까지 넘보고 있다. 양재림은 "빠른 종목(수퍼대회전)을 하고 나면 코스가 익숙해져 두려움이 줄어든다. 실수를 줄여 회전에서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정선=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