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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이 속 편하다? 할리우드는 ‘프랜차이즈 무비’세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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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호 26면

[CRITICISM] 한·미 시리즈 영화 극과 극

속편·프리퀄 등 다양한 시리즈 제작은 미국 영화계의 강점으로 꼽힌다. 사진은 마블 최초로 흑인 슈퍼히어로가 주인공인 영화 ‘블랙 팬서’의 한 장면. [중앙포토]

속편·프리퀄 등 다양한 시리즈 제작은 미국 영화계의 강점으로 꼽힌다. 사진은 마블 최초로 흑인 슈퍼히어로가 주인공인 영화 ‘블랙 팬서’의 한 장면. [중앙포토]

매년 점유율 기적처럼 50%를 넘기고 있긴 하지만, 한국영화는 불안하다. 흥행의 구조 때문이다. ‘천만 영화’를 중심으로 몇 편의 흥행작들이 박스오피스를 이끄는 구조는 취약하다. 작년은 좋은 사례다. 11월까지 한국영화는 흥행 부진이었다. 점유율 50%를 못 넘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연말에 ‘강철비’ ‘신과 함께-죄와 벌’ ‘1987’이 말 그대로 ‘하드 캐리’를 하면서 50%를 넘기긴 했지만 이런 상황은 언제라도 올 수 있다. 올해 11월에 위기설이 안 나온다고 아무도 장담 못 한다.

작년 미 박스오피스 1~10위 석권 #비디오 게임·TV 시리즈로 재탄생 #티셔츠·OST 등 부가 시장 동반성장 #한국서도 90년대까지 더러 제작 #영화산업 발전한 21세기엔 드물어 #제작자 뚝심, 모험적 자본투자 필요

 독과점부터 젠더 불평등까지 수많은 현안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영화의 산업적 토대가 튼튼해지려면 결국은 ‘프랜차이즈’ 중심의 시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하면 시리즈 영화로 승부를 봐야 한다. 할리우드를 보자. 2017년 박스오피스 1~10위의 영화는 죄다 프랜차이즈 무비였다. 시리즈 영화나 리메이크이며, 그 절반은 마블과 DC 유니버스에 속해 있었다. 사실 북미 영화 시장을 프랜차이즈가 장악한 지는 오래되었다. 1970년대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블록버스터를 발명한 이후, 미국영화는 속편, 프리퀄, 리메이크, 스핀오프, 리부트 등 갖가지 방법으로 이미 익숙해진 콘텐트와 캐릭터와 스토리를 끊임없이 가공했다. 티셔츠부터 OST까지 각종 부가 시장이 동반 성장했고, 영화는 비디오 게임이 되고 때론 테마파크로 만들어지며 TV 시리즈로 재탄생하는 식으로 가치를 늘렸다. 특히 슈퍼히어로 코믹스의 영화화가 가속되던 21세기의 할리우드는 가히 프랜차이즈의 세상이 되었다.

 “속편이 속 편하다”는 아재 개그처럼, 시리즈 영화엔 많은 장점이 있다. 가장 큰 건 친숙함과 기대감이다. 대중 영화엔 익숙한 쾌감과 함께 새로움이 있어야 한다. 마블 무비는 단적인 예다. 익숙한 캐릭터들의 시리즈 속에서 새로운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하고, 잊혔던 캐릭터가 귀환하며,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을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거대한 우주를 이룬다. 매년 서너 편의 마블 무비가 나오는데, 스튜디오 입장에서 이 영화들은 1년 라인업의 중심을 잡아주는 이른바 ‘텐트폴 무비’가 된다.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는 영화들이 시즌마다 포진해 흥행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전통이 없었던 건 아니다. 황금기로 불리던 1960년대, 여러 장르가 상업적 공식을 확립하면서 스타와 히트작을 배출했다. 그러면서 흥행 시리즈가 등장했는데 ‘미워도 다시 한번’(1968)은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대완결편’까지 네 편이 이어지며 신파 모성 멜로의 공식을 반복해 많은 관객을 모았다. 이후 ‘용팔이’ 캐릭터가 액션계를 수놓았고, ‘팔도강산’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었으며, 아역배우 김정훈을 내세운 ‘꼬마 신랑’ 시리즈도 있었다. 1970년대엔 청춘 영화 장르에서 ‘진짜진짜 시리즈’와 ‘얄개 시리즈’가 등장했다. 1980년대엔 ‘애마부인’ 시리즈를 필두로 수많은 에로 프랜차이즈들이 극장가를 장악했다. 이와 함께 ‘우뢰매’ 시리즈와 ‘영구’ 시리즈가 아동 영화 시장을 장악했다. ‘돌아이’ 시리즈 같은 진일보한 액션 영화도 나왔다. 1990년대엔 ‘투캅스’ 시리즈가 있었고, 세기말에 등장한 ‘여고괴담’(1998)은 10년 넘게 5편까지 이어지며 한국영화사의 가장 인상적인 호러 시리즈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영화 르네상스’라 불리는 21세기 한국영화는 이렇다 할 프랜차이즈를 발명하지 못했다. ‘강철중’ 시리즈나 ‘조선 명탐정’ 시리즈가 있긴 했지만, 과거의 위용에 비하면 이렇다 할 성과는 아니었다. 물론 시도는 있었다. ‘화산고’(2001)는 한동안 속편 얘기가 나돌았고, ‘괴물’(2006)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성사되었다면 꽤 근사했을 프로젝트들이었다. 기존의 한국영화 시리즈와 달리, 컴퓨터그래픽을 토대로 독특한 캐릭터와 고유의 비주얼을 지니는 이 영화들은 프랜차이즈의 가능성을 지닌 영화들이었지만 안타깝게 현실화되진 못했다.

 관건은 토대였다. 한 편의 영화가 프랜차이즈로 발전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제작 환경이 필수다. 뚝심 있는 제작자와, 가능성에 모험을 거는 자본과, 절묘한 변주를 해낼 작가와 감독이 필요하다. 그런 안정감과 자신감 속에서 제대로 된 작품이 탄생한다.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작년 말에 개봉되어 흥행에 크게 성공한 ‘신과 함께-죄와 벌’은 올여름 ‘신과 함께-인과 연’으로 이어지는데, 이 시리즈는 한국적 프랜차이즈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토대로, 특유의 세계관과 인상적인 캐릭터를 지녔으며, 월드 마켓에서 통할 만한 상업성과 함께 ‘신파’라는 한국영화 특유의 DNA를 겸비했다. 진행 중인 ‘태권 브이’ 실사화 프로젝트도 기대감을 모은다. 한국의 프랜차이즈 무비. 아직은 시작 단계이며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영화계는 이 부분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조금 덜 불안한 영화계를 위해서라도.

한국영화 역대 주요 시리즈

일제 강점기   나운규의 ‘아리랑’. 1926년부터 1936년까지 세 편이 이어짐
1950년대 ‘자유부인’(1956)과 ‘속 자유부인’(1957)
1960년대 ‘미워도 다시 한번’ 시리즈 4편까지 나옴. 김효천 감독의 ‘명동’과 ‘용팔이’ 시리즈
‘팔도강산’ 시리즈 1972년 5편까지 나옴
1970년대 ‘진짜진짜’와 ‘얄개’ 시리즈
‘별들의 고향’은 3편까지 나옴
1980년대 ‘애마부인’‘변강쇠’‘빨간 앵두’‘매춘’ 등
 에로 시리즈 전성시대
‘우뢰매’‘슈퍼 홍길동’‘영구’ 등 아동 영화 시리즈
1990년대 ‘장군의 아들’‘투캅스’‘여고괴담(위 사진)’ 시리즈
2000년 이후 ‘강철중’‘조선명탐정(아래 사진)’ 시리즈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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