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뜻밖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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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준결승전> ●탕웨이싱 9단 ○안국현 8단

4보(48~64)=나이가 들어 경험이 쌓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는 것처럼, 바둑도 연륜이 쌓이고, 기력이 향상되면 반면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프로기사의 바둑에선 바꿔치기와 사석 작전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프로기사의 시선은 항상 반상의 더 큰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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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웨이싱 9단이 좌하귀 실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바둑이 흘러나가 싶었던 찰나, 뜻밖의 진행이 나왔다. 49로 끊어 과감하게 좌하귀 흑 다섯 점을 버리더니, 53~59로 하변 굳히기에 나선 것이다. 알토란 같은 좌하귀를 깨끗하게 버리다니, 아마추어 입장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좌하귀 흑돌을 살리는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참고도'처럼 두면 좌하귀 흑이 넉넉하게 집을 내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당장은 기분이 좋아도 그다음이 문제다. 좌하귀를 차지하는 대가로 원래 흑의 전략적 거점이었던 하변이 옅어지게 된다. 나중에 백이 A 자리로 뛰어들어오기라도 한다면, 하변이 모두 지워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참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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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바꿔치기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흑은 59로 단단히 하변의 빗장을 잠그고 63으로 성큼성큼 중앙을 향해 달아났다. 흑이 기분 좋은 출발. 안국현 8단은 상황의 여의치 않았다고 생각했던 걸까, 64로 깊숙이 적진에 몸을 담갔다. 위험 부담을 충분히 감수한 선택이다. 예정보다 빠르게 승부수가 나왔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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