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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자금 實査로 비자금 정치 끝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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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국회에 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을 제출했다. 선관위가 정당과 각종 선거의 후보 및 예비후보의 모든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에 대해 실사(實査)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법이 채택되어 왜곡없이 시행될 경우 정치자금의 흐름이 투명해져 우리 정치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현행 법도 정당이 정치자금의 수입.지출을 선관위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그 실상은 형식요건의 충족에 그쳤을 뿐이다. 16대 총선이 치러진 2000년 1월부터 5월까지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중앙당의 경우 선거비로 각각 17억원과 15억원씩을 신고했다.

신고된 내용에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권노갑 비자금에 대해서는 흔적도 없다. 신고 내용도 엉터리였지만 그동안 회계보고 감사에서 불법 혐의를 밝혀낸 것은 한 건도 없었다.

그러나 개정 의견대로 자료 제출 요구권과 조사권.동행명령권 등을 선관위에 부여하고, 기부자의 실명 공개, 수표 또는 카드 사용이 의무화되면 사정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치자금의 흐름을 투명하게 할 수만 있다면 정치개혁은 절반 이상 이룬 것이다. 권력형 부정부패, 정경 유착도 음성적인 정치자금 거래에서 비롯된다. 더군다나 정권이 끝날 때마다 검은 돈에 얽힌 권력형 부패가 불거지고, 이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폭발하고 있다.

야당이 기부자의 이름이 낱낱이 밝혀질 경우 야당에 정치자금을 줄 기업인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1997년 각각 3백60억원과 1백80억원이었던 한나라당과 국민회의의 후원금이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98년에는 22억원과 3백10억원으로 뒤집힌 것이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을 안 담글 수는 없다. 정치개혁은 절체절명의 우리의 과제다. 정치개혁이 회피할 수 없는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은 이상 정치권은 일시적 혼란과 손해를 감내하고 개정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 정도(正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