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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유행처럼 끝나선 안 된다” … 여성의 날 기념 토크쇼서 한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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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 기관장들이 성폭력 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서약을 합시다. 공공기관이 먼저 성폭력 근절 의지를 보인다면, 일반 기업들에도 시사점이 있을 것입니다.”(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세계 여성의 날(8일)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오후 7시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 2층 도서관. 여성정책 전문가와 여성단체 활동가, 시민 20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이제는 끝, 변화를 위한 압력’을 주제로 토크쇼를 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패널로 참석했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성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대안들을 마련해보자는 취지였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번진 가운데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높았다.

지난 7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여성의 날 기념 토크쇼가 열렸다.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번진 상황 속에서 시민 200여 명이 몰려 성폭력 예방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사진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지난 7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여성의 날 기념 토크쇼가 열렸다.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번진 상황 속에서 시민 200여 명이 몰려 성폭력 예방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사진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류벼리 청년활동지원센터 매니저는 회사 두 곳의 입사 면접에서 ‘성희롱을 당하면 어떻게 대처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한 구직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우연의 일치일 수 있겠지만, 이 구직자는 ‘매뉴얼대로 하겠다’고 답한 회사는 불합격했고, ‘성희롱을 당하지 않도록 제가 조심하겠다’고 답한 회사는 붙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직자와 같이 특정 조직에 소속돼 있지 않은 이들도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터놓고 얘기하고, 도움받을 수 있는 단체나 기관들이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생님, 해봤어요?" … 일상 속 성폭력 만연 

참석자들 사이에선 성폭력 예방 교육과 공공기관의 역할 강화에 대한 요구가 많이 나왔다. “성폭력 인식 개선을 위해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전 국민 대상으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흩어져있는 성폭력 예방센터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서울시청 내부에 컨트롤타워를 만들자”는 의견 등이 제시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어린 시절부터 성역할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관련 교재와 좋은 강사를 확보하기 위해 서울시교육청과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여성의 날 기념 토크쇼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현재 서울시립대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김보람 다큐멘터리 감독, 류벼리 청년활동지원센터 매니저.[사진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여성의 날 기념 토크쇼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현재 서울시립대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김보람 다큐멘터리 감독, 류벼리 청년활동지원센터 매니저.[사진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참석자들은 일상 속에서 겪은 성폭력 피해 경험을 토로하기도 했다. 자신을 ‘성희롱 예방 교육 강사’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강의를 나간 고등학교에서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저를 소개하면서 ‘젊고 예쁜 선생님이 오니 좋지?’라고 했어요. 남학생들은 ‘선생님 해봤어요?’ ‘(선생님 때문에) 성폭력 예방이 안 될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한 여성은 “밤길을 걸을 때마다 두려움에 떨고, 뒤에 누군가 따라오는 게 느껴지면 경계를 하기 위해 일부러 통화를 하는 척 한다”면서 “이런 걱정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여성들의 고백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은 “이제는 끝”을 함께 외쳤다. 일상 속 성폭력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20~30대 여성 참석자들, “꺼지지 않는 들불 되길” 

이날 토크쇼에는 사전에 참가 신청을 한 20~30대 여성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미투 운동이 하나의 유행처럼 끝나지 않고,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압력이 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생 윤모(22·여)씨는 “재학 중인 대학의 조교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학교에 신고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의기소침해 있는 내게 친구가 토크쇼 참석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많은 용기와 위로를 얻고 간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조금득(39·여)씨는 “‘미투’ 현상으로 이전엔 나도 무심코 넘기던 일들이 성폭력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면서 “미투를 외치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무시돼왔다. 이제라도 사회 운동처럼 번져 다행이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은희(34·여)씨는 “피해 여성들의 용기있는 고백이 한 때의 가십거리로 잊혀져선 안 된다.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꺼지지 않는 들불이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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