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재학생 실태 조사' 서울대 이재열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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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재학생 실태조사’를 총괄했던 이재열 교수가 서울대생의 의식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만난 사람 = 고대훈 사건사회 데스크

올해 개교 60주년을 맞은 서울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성의 전당이면서도 양극화와 엘리트주의의 온상으로 비판받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요즘 서울대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최근 서울대가 개교 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재학생 실태조사'에서 연구책임자를 맡았던 이 대학 이재열 교수를 만났다. <본지 3월 13일자 3면> 재학생 1391명을 표본 추출해 시행한 이번 면접조사에서 서울대생 40%는 자신이 정치적으로 중도라고 대답했고 5명 중 1명은 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취업과 진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정치엔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서울대생의 특성 중 인상적인 게 있다면.

"우선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건강하더라(웃음). 담배 피우는 학생들이 거의 없고 술도 조금만 마신다. 내적 동기가 있어 현재 전공(계열)을 선택한 학생은 학교생활 적응도가 높은 반면 점수와 학벌만을 고려해 입학한 학생은 그렇지 못했다. 다소 의외인 점은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적응을 잘하고 내적 동기 부여도 강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취업 등에 대한 현실적인 불안감과 연결된 현상으로 보인다. 과거 학생들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고민과 동기를 찾았다면 요즘은 취업이 단연 화두이며 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반면 고시 준비생들은 확실한 것을 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상대적으로 스트레스가 적은 편이다."

-운동권 문화의 퇴조가 뚜렷한 것 같다.

"1980~90년대는 권위주의 체제가 가시지 않았고 일반 학생들이 운동권에 대해 일종의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다. 실제 운동권의 비율보다 운동권의 목소리가 강했고 주장도 이상적이고 거시적인 주장, 즉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각종 운동권 행사에 학생 동원이 거의 안 되는 편이다. 요즘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는 주제는 노동자와 통일이 아니라 학점, 재수강 기준, 등록금 같은 실용주의적인 것이다. 다만 여성과 동성애자의 인권 같은 소수자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증가한 측면이 있다."

-학생들의 60.4%가 '지지 정당이 없다'고 대답했다. 지지 정당이 없는 비율이 기성세대보다 높게 나오는데 이를 어떻게 봐야 하나.

"2002년 대선 같은 정치 이벤트엔 젊은 층도 열렬히 호응했다. 당시 대선을 둘러싼 상황이 단순히 여야 간 경쟁이 아니라 엘리트적인 문화와 그것을 바꿔 보려는, 즉 감성에 와 닿는 새로운 실험 사이의 경연장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스릴 넘치는 이벤트가 없고 기존의 구태가 이어지니까 학생들의 탈정치 성향이 가속화됐다. 대학생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대북인식 설문(1:가장 적대, 5:가장 우호)에서도 서울대생 평균은 2.62로 다소 부정적인 편이었다.

"좌우를 떠나 기본적으로 같은 민족이니 화해하고 협력하자는 생각은 강하다. 하지만 학생들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어떠한 희생을 해서라도, 굉장한 비용을 무릅쓰면서 북한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은 적은 것 같다."

-서울대생의 부모 가운데 중산층과 대졸 이상이 많아 학력세습이란 말이 나온다.

"다른 상위권 대학들도 비슷하거나 더 심하다. 이 같은 현상은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적 부(富)가 늘어난 측면을 감안해 봐야 한다. 옛날엔 중졸도 대단한 학력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학 진학률이 80~90%에 육박한다. 당연히 부모 가운데도 대졸 학력을 가진 사람이 많아졌다. 이를 놓고 학력세습이라고 한다면 어불성설이다. 단면만 잘라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과거와 비교해 평가하려면 통계학적인 틀이 달라져야 한다."

-이번 조사에서 서울대생 가운데 강남 학생은 줄고 읍.면 출신은 늘었다고 했는데 청와대는 서울 시내 다른 지역에 비해 강남 지역 출신의 합격률이 9배나 높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역시 통계학적 문제가 있다. 이번 조사는 트렌드를 본 것이고 청와대는 단면을 본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 청와대가 말하는 양극화 현상은 해소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균형선발제 등의 효과다. 설사 양극화 현상이 사실이라고 해도 강남 학생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엔 여러 문제가 있다. 예컨대 많은 부모는 전세를 내서라도 아이가 고교 진학을 할 때면 교육환경이 좋은 강남으로 이사한다. 또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을 모아놓으면 상호작용이 강해져 성적이 더 올라갈 수 있다. 강남 학생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왜 높은지에 대한 종합적 분석 없이 단순히 '강남이 어디보다 몇 배나 높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처럼 순수학문을 공부하는 인문계열 학생들의 졸업 후 불안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보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인문계열 학생들이 취직 걱정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다. 이번 조사를 통해 보면 농생대 학생들의 불안감도 못지않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이상주의보다는 현실적으로 흐르니까 인문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더 불안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소신 지원을 한 학생들마저 불안감을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서울대생의 신문 열독률을 조사했더니 중앙일보가 공동 1위였다. 그럼에도 정기적으로 신문을 보는 학생들은 42.1%에 그쳤는데.

"독서량이 떨어지는 것과 일맥상통한 측면이 있다. 요즘 학생들이 선호하는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방식의 지식 습득은 축약적으로 지나가는 잔상에서 패턴을 잡아내는 데는 유익하지만 논리적인 것에는 약하다. 반면 책이나 신문과 같은 아날로그 방식의 인쇄매체는 논리적인 사고를 촉진시키고 긴 호흡의 유려한 문장을 습득하는 데 효과적이다. 실제로 요즘 학생들의 글을 보면 단문이 대부분이고 짜깁기를 해 전체 분량은 늘어난다. 하지만 고유의 사고방식이나 취향을 글로 논리정연하게 풀어내는 능력은 떨어진다."

-이성관.결혼관도 흥미롭다. 결혼을 전제로 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69.6%가 혼전 성관계가 가능하다고 했다.

"성 문제에 관대해지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다. 특히 여학생들의 성의식이 개방된 것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난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요즘 총리 지명자도 여성이고 대학과 사관학교의 수석 입학.졸업자가 모두 여성 아닌가."

-학생들이 서울대 선배들에 대해 엘리트주의.학벌주의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서울대를 나온 사람들이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다. 요즘 정부에서 얘기하는 양극화 화두로 더 부각됐는데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서울대 졸업생들이 엘리트주의를 조장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서울대생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가장 투쟁적이고 개혁적인 집단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가 과도하게 부각된 점은 시간이 흐르면 해소될 것으로 본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탈정치.개인주의'다. 서울대의 장래를 어떻게 보나.

"시대가 급변하니 교육방식과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서울대의 독점적 지위는 이미 많이 깨졌다. 신입생의 학력수준도 연세대.고려대와 별 차이가 없다. 공대는 카이스트와 포항공대의 약진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결국 과거처럼 엘리트를 독점하는 방식보다 내실 있고 전문성을 갖춘 새로운 엘리트를 만들어 가는 것이 서울대의 역할이라고 본다. 서울대의 비교우위는 기초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최근 사회봉사 과목 신설, 핵심교양 커리큘럼 등 새로운 제도를 계속 도입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재열 교수 약력

.1980년 대전고 졸업 .84년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

.92년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92~96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96년~현재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소장

.주요 저서:'경제의 사회학'(96년), '새천년의 한국인 한국사회'(2000년)

정리=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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