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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정폭력 가해자에게도 ‘전자발찌’ 채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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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영국이 가정폭력(domestic abuse) 가해자에게 전자발찌(electronic tagging)를 부과하는 초강력 시민 보호 명령을 추진 중이다. 추가적인 폭력·학대를 막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온라인상 접근도 금하고 가해자가 술이나 약물에 손대지도 못하게 할 방침이다.

피해자 요청 때 형사기소 전이라도 시행 명령 #대출금 강요 등 경제적 학대도 폭력에 포함키로 #프랑스·스페인 등 이미 시행, 미국도 일부 주 시행

8일(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정부가 공개한 가정폭력방지법(DAPOs) 초안에 따르면 피해자 혹은 가족 구성원이 요청하면 가정·민사·형사 법원은 형사 기소 전까지 가해자의 추가 폭력을 막기 위한 전자태그 착용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알코올과 약물 치료를 수반하는 ‘부모 되기 프로그램’도 부과된다.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이 법안이 가정폭력에 대해 경찰과 법원이 개입할 수 있는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힌 “전례 없는” 대책이라고 전했다.

전자발찌

전자발찌

세계 여성의 날에 공개된 이번 초안에 따르면 ‘가정폭력’에는 물리적·심리적·성적·정서적 학대뿐 아니라 처음으로 경제적 학대까지 포함된다. 경제적 학대란 가족 성원에게 대출을 강요하거나 임금·은행계좌 등을 원천 징수하는 행위를 포괄한다.

메이 총리는 이날 가디언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날마다 수많은 여성들이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공간에서 상상하지 못할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이 고통을 이제 끊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나는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한 집에서 자랄 만큼 운이 좋았다. 모두가 (나처럼)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앰버 러드 내무장관도 “매년 (영국에서) 200만 여명의 여성들이 가정폭력을 겪고 있다”면서 “이번 법안을 통해 국가가 가정폭력을 생각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이번 초안 검토는 오는 5월31일까지 진행된다.

여성·아동 보호 시민단체들은 즉각 환영의 뜻을 표했다. 야당인 노동당은 원론적으로 찬성하면서도 메이 정부가 정부 예산 부족을 이유로 2만1000명의 경찰 인력을 감축하고 여성 보호소 축소를 추진하는 상태에서 이 같은 법안이 넌센스라고 지적했다.

유럽에서는 이미 프랑스·스페인 등이 배우자를 폭행하면 가해자에게 전자장치를 채우고 일정 거리를 넘어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2008년 가정폭력으로 157명의 여성이 숨진 프랑스는 2010년부터 스페인의 사례를 참고해 가해자에게 전자팔찌를 부과하고 있다. 스위스도 지난해 10월 배우자를 물리적으로 폭행하는 가해자에게 접근금지 명령과 함께 전자팔찌를 채우는 방안 등을 담은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미국도 메릴랜드 등 일부 주가 시행 중이다.

전자팔찌(발찌)는 일반적으로 손목(발목)에 차는 부착장치와 휴대용 위치추적장치, 재택감독장치 등 3개로 구성된다. 전자발찌 부착자는 외출시 휴대용 위치추적장치를 함께 가지고 다녀야 하며 이동경로 등의 정보가 GPS발신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24시간 관계당국에 전달·기록된다. 기록은 법정 증거물로 사용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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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2008년 9월 성범죄자들에 한해서 전자발찌가 도입돼 시행되고 있다. ‘특정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부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는 2회 이상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거나 13세 미만의 어린이를 상대로 성폭력을 가한 범죄자, 가석방이나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날 보호관찰 대상인 성범죄자 등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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