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금통위는 시장과 대화할 줄 알아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금융통화위원회의 변화 가능성에 필자가 이처럼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특정인에 대한 포폄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한국은행법과 경제원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집행됐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1997년 말에 개정된 한국은행법은 '물가 안정'을 통화정책의 유일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물론 한국은행은 '정부 정책과 조화'를 도모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물가 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것이고, 한국은행은 일단 결정한 '물가 안정 목표의 달성'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은 이런 법률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는가. 애석하게도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2001년 여름에는 물가 상황이 지극히 위태로웠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은 경기부양을 위해 7월 이후 잇따라 콜금리를 인하했다. 그 결과 2001년의 물가 목표는 준수되지 않았고 지금까지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라는 부작용까지 초래했다.

물론 이때의 통화정책은 박 총재가 부임하기 전의 일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태도는 박 총재의 부임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된 2002년 이후에도 한국은행은 확장적 통화정책 기조를 변화시키지 않았다. 심지어 2003년 5월에는 콜금리를 4.25%에서 4%로 인하하면서 "유효성은 없지만 경기부양을 위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이런 정책 방향을 선택했음을 공공연하게 천명하기도 했다.

통화정책의 큰 물줄기를 떠나서도 지난 금융통화위원회는 여러 면에서 구설에 올랐다. 박 총재는 외환보유액 관련 정책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외교적 언사로 시장에 미묘한 뉘앙스를 전달해야 하는 중앙은행 총재의 사명을 망각한 채 특유의 직설화법을 사용함으로써 금융시장에 오히려 불필요한 불안을 야기하기도 했고, 금융기관 재직 시절 행동과 관련해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징계받은 금융통화위원의 진퇴 여부를 두고도 온갖 말이 많았다.

이제 4월 7일 이후 새로 출범하는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런 명예롭지 못한 전통을 바꿔 나가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다. 우선 필요한 것은 금통위 내부를 단속하는 일이다. 금융통화위원은 매우 영예로운 자리일 뿐 아니라 국가경제 운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금융통화위원은 전문성과 윤리성을 겸비했을 때만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재경부나 국회와의 관계에서도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법을 지키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물가 안정만을 통화정책의 유일한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한은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누가 뭐래도 금융통화위원회는 물가 안정에 최우선의 관심을 둬야 한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시장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통화정책은 금융시장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신임 총재는 전임자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제는 더 이상 중앙은행 총재가 부적절하거나 사실과 다른 발언을 통해 금융시장을 불필요하게 교란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