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색 벗는 「국학총본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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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발전연구위원회 (위원장 한우근)가 25일 최종 확정, 곧 대통령에게 보고하게될 정문연개편방안은 설립이래 계속 그 비중이 커져온 「국책연찬기능」의 전면적 폐지가 초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개편방향의 설정은 그동안 정문연의 역할에 대한 비판의 핵심을 소화했다는 점에서 학계와 관계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76년 설립구상때부터 그 진로설정에 있어 논란이 많았었다.
고박정희대통령의 구상에 의해 설립된 정문연은 박대통령의 통치이데올로기인 「유신이념」의 확립을 목적으로 주체성 확립을 지원하는 국학연구와 함께 이를 정치적으로 수식해 국민에게 보급하는 것을 주요 사업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정문연설립계획이 처음으로 구체화된 77년1월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설치 및 운영방안」에 따르면 설치목적은 『우리 고유의 문화사상 및 윤리를 재발견하고 이를 국민지도층에 고취함으로써 주체성이 희박한 국민정신을 고무 발양 심화하며 나아가 민족중흥의 기운을 진작케함』으로 돼있다.
이는 정신교육적 측면을 강조하고 유신이념의 한국사상사적 체계화, 전래적 윤리관에 입각한 새마을 정신의 정립등을 정문연의 가장 중요한 연구목적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러나 1년뒤에 작성된 안은 설립 목적에서 유신·새마을운동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빼고 『국가발전을 위해 전통문화영역을 중심으로 전통사상의 재정리와 국가 당면과제 연구에 치중한다』고 밝혀 1년전보다는 훨씬 정치적 색채가 축소되었다.
모호하게나마 정문연의 설립목적이 1년새 정치적 색채를 벗게된 배경은 77년6월 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연구준비위원회 (당시 위원장 김태길 서울대교수)에서 정문연을 순수국학연구기관으로 확립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학연구의 총본산」역할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 학자들의 의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빗나가게 되었다.
특히 80년이후 억압정치가 강화되면서부터는 「국학연구의 총본산」의 기치는 금속히 퇴색되고 「국민정신교육」이라는 이름의 정치연수기능, 즉 「국책연찬기능」이 크게 강조되는 방향으로 정관변경과 예산배정·기구개편이 여러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결과 최근에는 사업목적을 「주체적 역사관과 국가관에 투철한 인재양성」이라고 규정하고 대학교수·국회의원·재계지도자·중견 언론인등을 대상으로 고교수준의 유치한 좌경이데올로기 비판등을 주요내용으로 한경직된 「새마을연수」기능에 전념하는데까지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정문연의 파행적 운영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 것은 우리사회에 민주화의 요구가 거세어진 지난해 10월부터였다.
당시 정문연 재직교수12명은 문홍주원장에게 「정신문화연구원 발전을 위한 건의문」을 제출하고 △한국학연구의 총본산기능 회복 △연구기능의 강화와 여타사업 대폭축소 △부설 대학원체제의 개혁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금년1월 정문연에 몸담았던 전직교수 27명이 문교부에 건의한 「정문연의 진로에 관한 건의서」를 발표하면서 증폭돼 파문을 일으켰다.
이러한 요구들은 지난1월말 노대통령이 문교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정문연의 새로운 방향정립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함으로써 개편논의로 연결됐다.
이번 개편건의는 이같은 과정을 거쳐 정신문화연구원과 직접관련이 없는 원로학자들을 중심으로 발전연구위원회가 구성돼 구체적 개편방안이 마련된것이다.
발전연구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은 △정문연은 국학연구기관으로써 기능을 회복해야 하며△관주도의 성격을 탈피, 순수학술연구기관이 되어야 한다는문제 제기와 △정문연의 명칭변경 △국책연찬 기능의 폐지 △대학원의 한국학전문화등으로 요약된다.
새로운 이름으로는 한국문화연구원·한국학연구원·인문사회과학연구원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제 정문연의 새로운 방향설정은 학문적 갈증을 해소시켜줄 것으로 다시한번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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