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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집권 때 日 외교 고위급 "오키나와에 미군 핵시설 용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54년 오키나와 주일 미군 기지 안에서 미군 기술자가 순항 미사일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1954년 오키나와 주일 미군 기지 안에서 미군 기술자가 순항 미사일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일본 외무성 고위관료가 과거 미국의 핵무기를 자국에 반입하는 것을 용인하는 발언을 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일본 정가에 파문이 일고 있다.
당사자는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외무성 사무차관이다.

아키바 외무차관, 주미 공사 시절 발언 #오바마 정부 때 NPR 작성 과정서 답변 #핵 저장시설 건설…"제안 설득력 있다" #비핵 3원칙 어긋나…고노 외상은 부인

아키바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 [교도=연합뉴스]

아키바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 [교도=연합뉴스]

문제의 발언은 2009년 2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8년마다 내놓는 ‘핵 태세 검토보고서(NPR)’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가 집권하던 시절이었다.
교도통신은 “당시 주미대사관 공사를 지내던 아키바 차관이 오키나와에 미군 핵 저장시설을 건설하는 것과 관련해 ‘설득력이 있다’고 답변한 메모가 발견됐다”고 6일 전했다.
이 메모는 미국의 비영리 조직인 ‘우려하는 과학자동맹(UCS)’의 그레고리 쿨라키 박사가 공개했다.

메모에 따르면 미 의회가 설치한 전략태세위원회 부위원장인 제임스 슐레진저 전 국방장관이 “오키나와나 괌에 핵(무기) 저장시설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 일본은 어떻게 보냐”고 묻자 아키바 당시 공사가 “그러한 제안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서면으로 답했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은 “미군 전술핵을 오키나와에 재반입해도 좋다는 표현”으로 해석했다.
미군은 1954년 이후 오키나와 주일미군 기지 2곳(헤노코, 가데나)에 핵무기를 배치했다.
그러다가 1972년 일본에 오키나와를 반환하면서 핵무기를 철수시켰다.
“핵무기를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일본 정부의 ‘비핵 3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아키바의 발언은 이런 일본 정부의 입장을 뒤집는 것이다.

미군이 1960년대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 인근에 건설한 핵무기 저장고. [사진 미 공군]

미군이 1960년대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 인근에 건설한 핵무기 저장고. [사진 미 공군]

오키나와 지역지인 류큐신보에 따르면 아키바의 답변에는 미국의 소형 핵무기 보유 지속을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오바마 정권이 퇴역을 검토하던 잠수함 발사 핵 순항미사일 등에 대해서 억지력 유지 차원에서 중요하다는 인식을 드러냈다고 한다.
아키바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핵무기 운용과 관련해 고위급 협의 채널을 가동 중인 것과 관련해서도 “나는 찬성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아키바 차관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자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상은 즉각 진화에 나섰다.
고노 외상은 6일 기자들에게 “(NPR 작성 시 미국 측의 일본 의견 청취는) 있었다”면서도 “아키바 차관에게 확인했지만 그런 답변은 없었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전술핵 배치를 바라는 일본 정부의 속내가 드러났다는 반응도 나온다.
미국이 동맹국에게 공식 질의한 데 대한 답변서 성격상 외교관 개인의 의견이 아닌 정부 입장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메모를 공개한 쿨라키 박사도 “미국의 핵무기를 오키나와에 보관할 수 있도록 양국이 합의했을 가능성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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