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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긴급사태 땐 국민기본권 제한"…전체주의 회귀 반발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7월 일본 육상자위대 대원들이 지진으로 산사태가 발생한 후쿠오카 도호 마을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EPA=연합뉴스]

지난해 7월 일본 육상자위대 대원들이 지진으로 산사태가 발생한 후쿠오카 도호 마을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EPA=연합뉴스]

일본 집권 자민당이 현재 추진 중인 개헌안에 긴급사태 발생 시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으려고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국가긴급권’이다.
일제 패망 전 전체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야권과 시민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내 논의가 급진전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국가긴급권' 발동 시 재산 몰수, 이동권 제한 가능 #"사실상 계엄령…전후 민주주의 무너뜨리는 것"

6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자민당헌법개정추진본부는 지난 5일 비공식 간부 모임을 갖고 긴급사태 조항에 대해 논의했다.
긴급사태란 재난·재해나 적으로부터의 무력 공격 등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국가긴급권을 발동해 민간인의 토지를 수용하거나 국민의 이동권을 통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과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자민당은 긴급사태와 관련해 국회의원의 임기를 자동으로 연장하는 안에 집중했다.
긴급사태가 일어난 가운데 임기 종료를 맞을 경우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가 지난 1월 자민당 전체 모임에서 강경파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이 “의원 임기 연장만으로는 부족하다”며 “2012년 작성된 당 초안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내용도 명기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자민당 간사장. [교도=연합뉴스]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자민당 간사장. [교도=연합뉴스]

그런데 6년 전 자민당의 개헌 초안에는 긴급사태의 범위에 내란 상황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야권에선 “국가긴급권은 사실상 계엄령”이라며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과 독일 나치를 떠올리게 한다”고 반발해왔다.
정부가 사회질서 유지를 빌미로 내란을 특정해 국가긴급권을 발동할 경우 전후 민주주의의 근간이 무너진다는 지적이다.

자민당의 발목을 잡는 건 여론만이 아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국가긴급권에는 반대하고 있다.
기타가와 가즈오(北側一雄) 공명당 부대표는 이미 공식 석상에서 “헌법상 규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간 자민당도 이런 공명당의 반발을 의식해 한발 물러서는 듯한 태도를 취해왔던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개헌추진본부장 등 집행부 사이에서도 온도차가 있다”며 “조만간 열릴 전체회의에선 조문안 자체가 아닌 의사 표출 정도에 그칠 수 있다”고 6일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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