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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의 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땅바닥에/쥐새끼 보다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김춘수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방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1956년10월 부다페스트시가를 뒤덮은 소련탱크의 캐터필러 소리는 자립과 자유를 부르짖는 헝가리인 들의 절규를 짓눌러 버렸다.
헝가리란 「10개의 화살」이란 뜻이다. 그들의 원조는 시베리아의 우랄산맥 부근에서 용맹을 떨치던 기마민족 마자르족. 9세기말에 남하하여 10개의 화살을 쏘아 닿은 땅을 영토로 삼았다.
그래서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는 유럽 속에 있으면서도 도시곳곳에 「동방」의 옛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동양인 여행자들의 여수를 자아내게 한다.
그 헝가리가 동구권에서 가장 먼저 자유의 숨결을 터뜨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45년3월 토지개혁 때 극소수지만 개인의 토지소유를 인정했다. 또 동구권에서는 유일하게 선거에 의해 사회주의 국가가 된 나라다. 종교의 자유도 49년 헌법에 이미 보장했다.
그러나 당시 반소의 기치를 든 배경에는 그들이 자랑하는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 「루카치」의 철학이 크게 작용했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를 가진 나라들이 평화 공존하는 시대에 있어서 기본모순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의 모순, 즉 노동계급과 부르좌 사이의 모순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간의 모순이다.』
「루카치」는 의거실패 후 루마니아로 망명의 길을 떠났지만 그의 발언은 지금도 헝가리 개방정책의 이 법이 되고 있다. 엊그제 열린 헝가리 임시 공산당대회에서 56년 후 32년간 헝가리를 이끌어온 「야노스·카다르」 당서기장이 퇴진했다. 후임에는 개혁주의자 「카롤리·그로스」수상이 임명되었다.
소련탱크의 캐터필러에 짓밟혔던 그 부다페스트에 진정한 봄이 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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